늦게 일어나 천천히 씻고 준비하고. 더운 날씨에 꽤나 걸을테니 오늘은 조금이라도 먹어둬야지 하며 식판 가득(!)아침 먹고 올가갔더니 샘들이 승차하고 계신다. '논산은 공주 위에 있겠지' 하며 햇볕 들어올 자리를 계산해서 오른줄 창가자리에서 왼쪽 자리로 굳이 옮겼다. 그리고 ㅇ주에게 전화했더니 안 받는다. 차에 오르고 있다 불러서 옆 자리에 앉히고. 성격 좋은 반장이 인원점검 끝내고 출발~
어라, 공주대 앞에서 우회전을 하는 게 아니라 좌회전! 따가운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답사여행의 길잡이]를 찾아봤더니 논산은 공주 아래쪽에 있다. 에구.. 지도 확인하고 자리 옮길걸... 이런 식이라면 오늘 하루 종일 햇볕 들어올테니 커튼 쳐야 할 것이고 창밖을 볼 수 없다. 경미한 폐쇄공포증에 창밖경치 밝힘증까지 있는 나로서는.... 괴로운 하루의 예감.
윤증고택은 '미닫이 여닫이 문'과 '내외문'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책에서 읽었다. 동학혁명 때 공주로 진군하던 농민군이 불을 지르려고해 그을린 자국이 남았다는 서까래는 글쎄... 어느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계속 집을 수리보수하고 있을테니 '미닫이 여닫이 문'처럼 다른 목재로 대체되어 이미 버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직접보니 신기했다. 이 지역에서 떵떵거리던 지주, 향촌 토호였을텐데도 가족 수에 비해 그리 넓지 않다. 평수에 목숨 거는 현대인들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했다. 창문이 많은데다 前低後高의 건물구조로 통풍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라 하였다. 이런 고가에 오면 제일 마음이 가는 건 건물 곳곳에 사용된 나무들이다. 300년 전의 이 나무들은 세상의 변화를 품고 있을 듯 해서 자꾸 쓰다듬어 보게 된다. 아무튼 이런 옛집에 오면 자꾸 욕심이 생긴다. 이 정도 호사는 아니더라도 소박한 전통가옥 하나 가졌으면... ㅁ자 모양의 마당도 있고 대청마루에 앉아 바람쐬며 꼬박꼬박 졸 수도 있는... 무슨 한가한 잠꼬대인지..
돈암서원은 김장생, 송시열 또 다른 두 사람(기억안난다--;)을 모신다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원!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논어의 한 구절인 '博文約禮'와 '地負海涵' 두 문구가 생각난다. 하나가 더 있는데 역시 까먹었다. (두 구절씩이나 기억하는 게 대견타) 그리고 무지 더웠다.
대둔산 수락공원 곰팡내 나는 식당에서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변변히 없이 땀 삐질삐질 흘리며 오리탕으로 점심을 먹고 여러가지 군것질 거리를 가지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어라~ 저 녀석들은 고딩이 아닌가.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물장난을 치며 하나 둘 물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근처에는 아이들이 먹어치운 것으로 보이는 삼겹살과 수박두덩이와 군것질 거리들....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아이고 저 놈들이 즈들끼리 이런데 와서 놀 줄도 아네. 저렇게 즐겁게. 정이 절로 생기겠네. 자세히 보니 의상이 통일되어 있다. 한 무리는 분홍색 티셔츠에 남색 바지. 디자인이 똑같다. 다른 한 무리는 NO Aamne~(실제로 보면 진짜 웃긴 디자인이다. 겨드랑이에서 암내가 솔솔 나는 사람 그림에 /표가 그어져 있는!)라고 쓰여진 빨간색 티셔츠. 아마도 반티인가 보다. 암튼 녀석들 너무 신나게 놀아서 내가 다 즐겁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반 녀석들도 화명동 애기소로 물놀이 간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다녀왔을까?(문자 넣어보니 그동안의 비땜에 보충 끝나는 다음 날인 이번주 토요일 간단다. ㅋ) 부산 있었어도 같이 가진 않았을 거다. 저렇게 물에 온통 젖는 것, 무섭다. ==; 연수 끝나고 개학하기 전에 번개나 함 때려야지.
'황산벌'이라는 영화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대사는 계백의 부인(김선아)이 아이들과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남편을 향해 매섭게 대꾸하는 모습이었다. 이 한 장면 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계백의 평가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고 하면 지나친가?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어야제. 그거 마시고 먼저 가소"
"뭣이라고라? 아 시방 이녁이 그라고 말할 자격 있당가요? 아 글면 우들이 아이고 서방님, 아이고 아버지, 이 약사발 쳐묵고 우리 다 뒤져불라요 아 이랄 줄 아셨소? 에끼 이 인간아"
"길게 끌면 추해지요 깨끗하게 갑시다."
"워매 긍께 시방 생떼 같은 내 새끼들한테 자진해서 다 뒤져부리라고라이? 씨만 뿌려놓고 밤낮 칼쌈하러 싸돌아 댕긴 인간이 말이여 인자 와갖고 뭣이 어쩌고 어쩌?"
"그거 마시고 죽을껴? 내 칼에 죽을껴?"
"나가 시집와갖고 이날 평생 악밖에 안 남은 년이여. 염병하고. 그라고 인간아 니가 뭣을 해준게 있냐? 뭣을? 전쟁을 하등가 말등가 나라가 쳐 망해불등가 말등가 그것이 뭣인데 니가 내 새끼들을 죽여뿐다 살려뿐다 그려야. 느그 애미애비가 살았어도 느그 애미애비도 이라고 죽여불라냐?"
"호랭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혔다. 제발 깨끗하게 가랑께"
" 뭣이 어쩌고 어쪄? 아가리는 삐뚤어 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불여야제. 호랭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거여 이 인간아."
계백 묘 앞에는 그의 충성심과 용맹을 찬양하는 한 수의 현대시가 적혀있었다. 아니 그 전에 역사시간이나 한문시간에 우리는 이런 그의 행동을 긍정고무하는 많은 말들을 들어온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계백의 장렬한 최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과연 그가 한 짓은 무엇인가? 나라가 망할 것을 예감하고 가족을 제 손으로 죽이는 남편, 아버지를 그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영화의 내용이 훨씬 진실에 접근하지 않을까? 사실 나라나 민족이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에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들이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교육받아온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적 일체감 등등은 한갓 국가 이데올로기, 그것 뿐이지 않을까?
돌아와서 냉면을 저녁으로 먹고 2차 노래방 가자는데 그냥 빠져나왔다. 부산 다녀온 뒤 과식,폭식으로 탈이난 속이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냥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말없이 온 게 맘에 걸린다. 당당하게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라고 한 마디라도 하고 올걸... 교수님들은 노래방이 정말 즐거우신걸까?
ㅇ주랑 돌아오는 길에 지난 금요일 내 뒤에 앉았던 선생님들 두 분께 내 답지를 보여드렸노라고 가볍게 말했다. ㅇ주는 바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가?"했다. 아~ 나는 갑자기 난처해졌다. 그래서 "ㅇ주야, 니 교감 교장 될거가?"라는 쌩뚱맞은 질문을 해버렸다. 사실 이건 ㅇ주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고 승진에 맘을 두고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내 마음을 드러낸 거라고도 할 수 있는 위험한 질문이었다. 그저 가볍게 '나이 드신 분들이 너무 힘들어보여서'라고 이야기할걸... 당연히 착실한 ㅇ주는 "나는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 그리고 시험은 공정하게 봐야지"라고 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이런 류의 시험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등의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험 점수는 교장교감 될 사람 아니면 사실 별 의미도 없으니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어르신들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살짝 보여드렸고, 내 답에도 오답이 많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맺었다. 내가 전교조인걸 아는데... 나땜에 전교조도 점점 받아들이기 힘들어할까봐 걱정이 된다.
대한민국 교육 착실히 받아 그저 착하고 성실한 ㅇ주에게 나는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ㅇ주에 비해 나는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한 사람 아닐까? 목적이 없어도 그저 열심히 하는 성실착실한 사람과, 목적은 물론 그 과정 자체마저 부정하면서 시니컬하게 행동하는 사람. 누가 사회에 더 도움이 될까? 사실 나는 이 국가사회에 별 도움이 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가치롭게 생각하는 일들 조금씩 하면서 나의 아이들이 나와 더불어 조금이나마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나는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에게 비교육적인 교사로 보이고 이상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져서야....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