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다닌 30여 년 전에는 ‘공부 좀 한다’ 하는 대학생들은 “죽어도 ‘선생질’은 안 한다”는 말을 무슨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여건이 충분히 되는데도 교직과목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면 “교사자격증 따놓았다가 나중에 결국 선생 될까봐….”라고 답하곤 했다. 우등생들에게 ‘교사’란 직업은 인생 막장에서 선택하는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졌다.
요즘은 그와 정반대다. 어릴 때부터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책을 한 권 사줘도 “이런 책 읽으면 선생님 되나?” 묻곤 하던 딸아이가 고3이 되더니 “아빠, 상위 2% 안에 들어도 교대 가기 어렵대”라고 걱정 어린 얼굴로 말했다. 사범대학 들어가기도 마찬가지로 어려워서 딸아이는 요즘 “물을 마셔도 소화가 안 된다”고 할 정도로 ‘고3병’을 앓는다. “공부 못해도 괜찮으니 스트레스 받지 마라”고 인심 쓰는 것처럼 말해줘도 “공부를 못하면 내 마음이 안 편해”라고 얼굴을 찌푸리는 딸아이 모습은 마치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 같다.
내가 아는 한, 교사의 봉급 인상이 일반 기업체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추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년 발표되는 교사와 공무원의 봉급 인상률은 일반 기업체 노동자의 평균 임금 인상률보다 항상 ‘매우’ 낮았다. 교사의 노동조건이 향상되는 속도가 다른 직장인들보다 결코 빠르지 않았다는 거다. 불가사의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교사의 노동조건이 향상되는 속도가 다른 직종보다 결코 빠르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교사’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종으로 자리 잡게 됐을까? 결론은 다른 일자리들의 노동조건이 급속하게 추락했다는 것이다. 교사의 노동조건이 정체돼 있는 동안 다른 직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오히려 후퇴했다는 것이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 ‘비정규직’ 현상이 얼마나 심각해졌으면 상대적 저임금 직종의 상징이었던 교직과 공무원이 상한가 인기 직종이 됐을까?
초창기 전교조에 몸담았다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이가 “전교조가 교사의 이익만 대변한다”고 질타하자 수구 보수 언론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말을 듣던 언론조차 이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전교조는 지나치게 비이기주의적인 집단이다. 그것은 저들이 흔히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기준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사회의 노동조합인 ‘전교조’는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군사독재 30년이라는 비틀린 우리 역사 속에서 기이하게도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해직당할 각오를 한 정의로운 교사들의 조직”으로 출발했다.
이제 전교조가 자본주의사회의 노동조합으로 서서히 자리잡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전교조가 1, 2급 정교사는 물론 학습지 교사와 보육교사, 학교식당 급식 노동자 등 교육 현장 내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에 나서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선진국에서 경찰노조나 판사노조가 설립돼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