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칼럼]돌아온 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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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슬기는 제 조카 아홉 명 중 여덟 번째입니다. 없는 집구석에서도 외아들이라고 신줏단지처럼 모셔졌던 제 남동생의 큰딸아입니다. 이 아이 백일 날 생모가 가출을 하고, 제 동생도 새끼 내팽개치고 행방불명이 된 후, 늙은 할아버지가 이 아이를 키웠습니다. 다리 저는 할아버지는 따라다닐 수 없으니 책상다리에 기저귀로 묶어놓고….

기저귀에 묶여있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이 아이 18개월 때 제가 부산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해고자였을 뿐인 제게 와서 하도 굶어 울 기운도 없어 걀걀거리고, 전두환 이순자 구속시키라고 한참 데모할 때라, 등에 업힌 아이가 최루탄에 그 여린 살갗이 벌겋게 허는데도 연고 한번 못 발라주었습니다. 아이를 굶긴다는 게 얼마나 무참한 일인지, 전 그 이후 단 한 번도 슬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했습니다. 기저귀에 묶여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이 아이는 다시 강화도 외포리의 책상다리에 묶이게 됩니다.

떠돌아다니던 지 애비가 여자랑 살림을 차리고 알량한 장사를 하는가 싶더니, IMF라는 게 터지고 다시 알거지가 됩니다. 새 엄마는 떠나고, 애비는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음전한 범생이가 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었던 슬기는 열여덟 살까지 용케 견디다가 가출을 하게 됩니다. 있는 집 아이가 유학이라도 간 것처럼, 슬기에겐 그게 당연한 수순이었던 듯 아무도 이 아이를 찾지 않았습니다. 다만 명절날 아침, 말없이 끊는 전화가 외포리로 걸려오면, 음복주 한 잔에 큰 언니가 꺼이꺼이 울 뿐이었습니다. 길을 가다 그 또래 아이들이 보이면 한 번 더 뒤돌아봤을 뿐입니다. 그 때마다 울 기운도 없이 하얗게 누워 바라보던 어린아이의 눈빛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어디서 뭔 짓을 하든 굶기는 고모보다야 못하랴 자위했을 뿐입니다.

그런 슬기가 2년 만에 외포리로 돌아왔습니다. 나갈 땐 멀쩡했던 아이가 미쳐서 돌아왔습니다. 2년 만에 만난 아이가 제일 먼저 한 인사는 땅바닥을 버르적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내며 꺽꺽 숨넘어가게 우는 일이었습니다. 남자들만 보면 괴성을 지르며 불화살 맞은 짐승처럼 날뜁니다. 이 작은 아이 하나 보살피지 못했던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복수라도 하는 듯,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온종일 알 수 없는 소리만 중얼거리며, 긴긴 하루를 보내는 게 이 아이의 일과입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만 할 뿐, 그게 사실로 굳어지는 저주가 내릴까 봐 아무도 입밖에 내질 못합니다. 자랄 때 제대로 먹질 못해 키가 150cm를 넘지 않고, 업으면 애기 때랑 똑같이 마른 삭정이 같은 슬기는 이쁜 ‘여자’도 아니고, 섹시한 ‘여자’도 아닙니다. 이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아이에게 세상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오래 망설이고 고민하다 아직도 외포리에서 그러고 있는 슬기 얘기를 썼습니다. 가출을 하는 아이들에겐 그만한 사정이 있음을 헤아려 주십사 하는 것과 이 땅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어떻게 망가지고 짓밟히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죄책감이나 가책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객관화’라고 생각했기에….

2006년07월10일 20: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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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7-1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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