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 마음에 조기를 달며...
한국사에는 무섭게도 굴곡진 날짜가 많습니다.
한국어에는 그런 날들을 독특한 숫자 읽기 방식으로 기억해 왔습니다.
독특한 숫자 읽기란, 6.25의 앞부분은 숫자로, 뒷부분은 소수점 이하처럼 읽었다는 것입니다. 육(점)이오로 말입니다. 그러면 12.12는 십이(점)일이로 읽어야 하겠지요.
숫자에는 아무런 가치 판단이 없기에 숫자로 기억해야 했던 그 슬픔까지 기억됩니다.
6.25를 사변이라고 한다면 난리를 일으킨 폭도에 비판의 초점이 맞추어 질게고, 민족해방 전쟁이라고 한다면 민족을 구속시킨 실체가 문제가 될 것이고, 한국 전쟁이라고 한다면 한국을 둘러싸고 그 전쟁을 실제로 수행한 이들을 모두 엮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오로지 지하실에서 죽어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한국어에는 가치 판단이 배제된 숫자만으로 사건 읽기가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6월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87년의 민주화 운동과 기만적 전향인 노태우의 항복이 있었고,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있었고, 김구 선생님이 저격된 달이기도 합니다. 4년 전, 붉은 월드컵의 에너지를 보기도 했었지요.
저는 4년 전, 월드컵에 온 나라가 미쳐 날뛸 때, 이래도 되는지... 계속 찜찜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보리가 춤을 춥니다.
파아란 하늘 아래서 짙은 풀빛 보리가 춤을 춥니다.
보리는 자기를 지키려는 듯, 기다란 가시를 겨누고 있지만,
살포시 잡아 보면,
흙의 따스함이 묻어 납니다.
열 다섯살, 두 계집애는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진지,
까르륵거리며 보리 이삭을 치기도 하고,
앙감질로 달려도 봅니다.
보리밭 사이로 포장된 도로는
널찍하긴 하지만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아 참 조용한 길입니다.
그르르르...
멀리서 캐터필러 소리 지축을 울립니다.
선이랑 순이는 친형제 아니지만,
선이나 순이나 영어로 쓰면 같다는 둥,
오늘 과학 시간에 실험을 잘 하던 철이가 멋지다는 둥,
새로 오신 미술 선생님은 얼굴은 안정환인데 성격은 정말 나쁘다는 둥,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며
선이네 집에서 순이네 집으로,
순이네 집에서 선이네 집으로,
얼마나 이 길을 오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길에서 장갑차를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닙니다.
선이와 순이 마을에서 미군을 만나는 일은
선이와 순이가 보리를 만나듯 어려서부터 익숙한 일이지요.
뒤에서 그르렁대는 캐터필러 소리에
선이와 순이는 오른쪽 옆으로 바싹 붙어 섰습니다.
서로 나누던 이야기도 잠시 멈췄습니다.
세상을 뒤흔드는 소리에 말소리가 잠겼기 때문입니다.
아~악!!!
갑자기 선이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동시에 순이도 신음 소리 섞인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쩌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르렁거리며 캐터필러는 계속 지나갔고,
보리가 웃자라 흔들거리던 밭 옆으로,
짓밟힌 꽃송이 둘 누워 있을 뿐이었습니다.
대~한 민국! 함성은 온 땅을 뒤덮었고,
천지는 웃는 사람들 투성이였습니다.
누구도 짓밟힌 꽃송이 따윈 돌아 보지도 않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아, 그러나...
짓밟힘이 숙명처럼 익숙해온 이 민족은,
풀이 되어 다시 모였습니다.
두 꽃송이 짓밟힌 자리에서,
풀뿌리는 동풍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섰습니다.
하늘거리는 가녀린 촛불로,
선이와 순이의 가는 길을
추모해 주었습니다.
주둔군 지위 협정이라는 소파는 여전하고,
주둔군을 한강 이남으로 철수시킨다는 알 수 없는 속셈은,
다시 대추리, 도두리 땅을 만든 노인들을 내쫓았습니다.
오늘은 두 꽃송이 짓밟힌 그 날입니다.
오늘은 토고와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슬픈 기억 따위 묻어 두어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마음 속에 묻어 둔다고 녹아지지 않습니다.
그 슬픔은 세월이 지난다고 흩어지지 않습니다.
월드컵은 4년이 지나 돌아왔지만,
주한 미군의 워커발에 짓밟혀 쓰러진
두 꽃송이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늘은 마음에 조기를 다는 날입니다.
아이들에게, 월드컵의 정치성에 대해서 그 상업적 속성에 대해서 아무리 역설해도, 파키스탄 어린이가 그 작은 손에 가득 굳은 살이 박여 만든 축구공이, 필리핀 어린이가 몇날 며칠을 짠 벌집모양 육각형 그물을 출렁일 때, 그 재미는 나머지 논리를 싸~악 잊게 할 만큼 중독성이 강합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맞붙는 또 다른 정치판, 현실 세계에선 이길 수 없는 강대국들을, 게임 안에서 만이라도 이기는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경기들은 관객들을 전율하게 하고, 사고를 마비시키며 내셔날리즘의 국가주의 광신도로 오락가락하게 만듭니다.
그 안에는 히틀러의 정신 분석적 요소도 들어 있고, 대동아 공영을 외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야심도 들어있는 호르몬들이 떠다닙니다. 붉은 악마의 구호는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 'Pride of Asia' 이렇게 국수주의적이고 대동아적입니다. 그렇지만 이 구호는 오랜 시절 우리 뇌리에 박혔던 애국심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이 호르몬은 한국인들이 몸으로 익혀온 지역주의, 아군 아니면 적군이란 시스템에 전이됩니다.
그래서, 월드컵을 즐기지 않으면 싸이코가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도 어제 일본과 호주의 월드컵 경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는 그 경기를 <제국주의자 일본>과 <한국의 벗 히딩크>의 경기로 재편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제국주의자 일본은 처음엔 장엄하게 떠오르는, 욱일승천의 기세였으나, 한국의 벗 히딩크의 어퍼컷에 나가떨어지는 꼴은 자못 통쾌했습니다. 중독은 이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밤, 이기든 지든 토고와의 축구는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붉은 티를 입고, 광장에 모이고 TV앞에 모여 앉아 붉은 유니폼을 응원할 것입니다. 함성이 퍼져 메아리 커져 갈라져 있던 땅덩어리 하나로 울릴 것입니다. 이 짜릿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마는,
오늘은 6.13입니다.
가슴에 작은 조기 하나 올려, 슬픔을 울릴 수 있어야 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