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하성태 기자] 96년이었을 거예요. 영화 잡지 KINO가 주최하는 시사회에서 켄 로치 감독을 처음 만났던 때가. 스페인 내전에 뛰어든 지식인 좌파들의 이야기를 현재와 연결시켜 좌파안의 모순을 그려냈던 묵직한 이야기 때문에 '아 영화가 이런 이야기도 그릴 수 있구나', 놀라움으로 봤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한참 역사나 사회에 대해 예민하던 때였기도 했지만 한총련의 연대 사태 직후라 더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던 영화였죠.
그 켄 로치, 영국의 좌파이자 리얼리스트인 노장 감독이 7전 8기 끝에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군요. 28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 5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국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에 부는 바람>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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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Sixteen Films Lt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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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Sixteen Films Ltd. |
| 1920년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그린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을 다뤘던 <랜드 앤 프리덤>과 은근히 비교되는 작품입니다. 9˙11 이후 정치적 행보를 거듭해 온 칸느영화제의 성향을 반영하는 듯하네요. 심사위원장이 왕자웨이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의외의 선택일 수도 있고요. <28일 후> <나이트 플라이트>로 얼굴을 알린 질리언 머피가 주연을 맡았네요.
켄 로치 감독은 <달콤한 열여섯> <빵과 장미> <레이닝 스톤> <랜드 앤 프리덤> 등의 작품으로 경쟁부문에 8번째 도전한 끝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켄 로치 감독은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은 외국인들에게 현재 미국의 이라크 전과 같은 울림을 준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시상식에서도 "영국의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다루는데 작은 진보가 있길 바란다"며 영국 정부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영국 프리시네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켄 로치는 대중적인 화법으로 역사와 진보, 그리고 계급에 문제, 복지사회 영국의 이면을 파헤쳐온 원칙 주의자입니다. 국내에서는 그의 영화 중 <빵과 장미> <레이닝 스톤> <랜드 앤 프리덤> 등이 개봉됐고요. 다수의 작품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됐으며 DVD와 비디오로 그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초기작 <하층민들>은 리얼리즘 계열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보리밭에 부는 바람>은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에 나서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렸는데요, 아마도 <랜드 앤 프리덤>과 동일한 계보위에 놓는 게 적당할 듯하네요. 그래서 더 반가운 영화구요.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볼베르>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 그쳤네요. 악동에서 성숙한 면모를 거듭 보이고 있는 알모도바르는 언제쯤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가져갈지 궁금해집니다.
<21그램>을 연출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아나리투가 자국인 멕시코 영화 <바벨>로 감독상을 수상한 것도 눈에 띄네요. 아시아권으로는 주목할 만한 시선에 중국의 왕 차오 감독이 <럭셔리 카>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치색을 띤 영화들이 강세를 보인 올 칸느영화제에서 한국영화는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감독 주간에 초청되는데 그쳤습니다. <괴물>이 2회 상영되는 동안 국내외 언론에 극찬을 이끌 낸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네요. 필름마켓에서도 역대 한국영화 수출 최고가를 경신하며 이미 제작비의 절반을 넘게 회수했다니, 그것만으로도 멋지지 않은가요?
* 각 부문 수상작/자 리스트
-황금종려상: <보리밭에 부는 바람> 켄 로치, 영국 -심사위원 대상: <플랑드르> 브뤼노 뒤몽, 프랑스 -심사위원상: <붉은 길> 안드레아 아널드, 영국 -감독상: <바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투, 멕시코 -각본상: <볼베르> 페드로 알모도바르, 스페인 -남우주연상: <영광의 날들> 자멜 데부제, 사미 나세리, 로슈디 젬, 사미 부아질라, 베르나르 블랑캉 -여우주연상: <볼베르> 페넬로페 크루즈, 카르멘 마우라, 롤라 두에나스, 블랑카 포르틸로, 요하나 코보, 추스 람프레아베 -황금 카메라상: <12시8분, 부쿠레슈티의 동쪽>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루마니아 -단편영화상: <스니퍼> 보비 페어스, 노르웨이 -주목할 만한 시선: <럭셔리 카> 왕차오, 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