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일-252호]
 
 

도살장에 팔려갈 늙은 소의 코끝에 붙은
살구꽃잎 한 장
소와 꽃잎이 들여다보는
길끝, 광주리 하나 걸어온다

살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시장꾸러미에 높다랗게 얹혀 실려가는
붓꽃 몇 송이
나를 본다, 모든 꽃은
오랜 약속에 붙이는 느낌표이다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  감 상 포 인 트

-비관적 생의 인식으로부터 일어나기

요즘엔 어디 먼 시골에라도 나가야 장이 서는 정겨운 풍경을 구경할 수 있지요. 대체로 5일장, 여러날 만에 열리는 시골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직거래의 현장이자 그곳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만남의 축제이기도 하지요. 그만큼 흥성스러운 열기와 설레임이 교차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라고 할 겁니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봄을 먼저 장터에서 꽃 피어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군요. “소의 코끝에 붙은/살구꽃잎 한 장”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소가 ‘도살장에 팔려가는 늙은 소’로 군요. 삶의 고달픔과 생명에 대한 연민이 함께 어려 있는 모습인 것이지요. ‘팔려갈 소’와 ‘떨어진 살구꽃잎’의 대조는 삶에 대한 애수와 더불어 아름다운 연민의 아이러니를 표출해 주어서 관심을 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와 꽃잎, 그리고 시장꾸러미 사이에 ‘나’의 모습이 등장하는 군요. 삶이란 고달픈 것이고, 생명이란 슬픈 것이라는 비관적인 인식이 제시돼 있는 모습이라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그러한 비관적인 인식이 드러나는 순간 갑자기 “살 수 있을 것 같다/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어차피 삶은 고달픈 것, 생명은 슬픈 것이지만 다시 온세상에 슬픔처럼 아름다운 봄이 오기에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점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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