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행사가 많은데도 학교 측에선 애매한 일정만 알려주었다. 그리곤 교사들을 상대로 의견조사를 하는데 이런 식이다.
스승의 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첫 번째 조사: 1안 소풍/ 2안 체육대회
이 조사는 결국 스승의 날, 학교 행사를 잡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학교처럼 휴업을 선택할 수 있는 교사들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한 파쇼적인 것이었다. 직접 확인한 바 없지만 15일도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라는 부산시교육청의 공문이 내려왔다는데 사실이라면 이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웃기시는 행정이고.. 이 조사 결과에 따라 소풍과 체육대회 날짜가 확정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담임인 나로서는 솔직히 이건 둘 다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스승의 날, 아이들과 소풍을 간다? 체육대회를 한다? 비담임샘들에게는 그 날 수업을 하느니 차라리 직접적으로 아이들과 맞닥뜨릴 일 없이 이렇게 운영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워서 좋다고 했지만 그건 담임의 희생을 볼모로 하는 것이라 왠지 억울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교사들 대부분은 이 조사가 진행될 때 스승의 날 휴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의 선택'은 최소한 세 가지 밖에 없는 줄 알았다. 정상수업을 하던가/ 소풍을 가던가/체육대회를 하던가. 암뭏든 결과는 체육대회를 하자는 의견이 제일 많았단다.
그런데 서울 쪽에서는 거의 휴무로 결정하는 분위기가 되고 부산의 많은 학교에서도 '휴무' 발표가 이어지자 샘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다른 학교는 쉰다는데 우리 학교는 왜 교사들의 의견을 조사'도' 안 하는데? 결국 이 불만은 부장회의에서 '학교 일정은 학교장의 결정사항'이라고 생각하는 그 분께 전달되었고 다시 두 번째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스승의 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두 번째 조사: 1안 체육대회/ 2안 휴무
직원회의 시간에 '그 분'께서 보무도 당당하게 일어서시어 '수업하기 싫어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이 아니'라며 샘들의 신중한 판단(?)을 역설했지만 보나마나 아이들이나 샘들 모두 당연히 2안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스승의 날은 학부모, 아이들, 그리고 교사들 모두에게 부담, 그 자체인 것이다. 아! '그 분'은 조금 섭섭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세 번째 조사가 있었다. (원래 이 날 학교 일정에 대해서는 학교장에게 결정권이 있으나 특별히 우리 교사들의 의견을 물어주시는 거라고 했다.) 체육대회는 11일로, 소풍은 12일로 결정하기로 하되
스승의 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세 번째 조사: 1안 오전수업/ 2안 휴무
이 역시 생각해보나마나 물어보나마나의 결과일텐데 왜 자꾸 의견조사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1안에 찬성한 교사가 19명. 2안에 찬성한 교사가 50명. 결과가 나오자 언제나 正道를 따른다고 자부하시는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학교 일정은 교장이나 교사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학운위'를 통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교사들은 누구도 학교일정을 잡기위해 학운위를 열었던 기억이 없다. 지난 해 여름/겨울 방학 때 실시했던 직원연수도 그저 우리(사실 누구인지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몇몇 분들...)얼렁뚱당 날을 잡았고 계획을 세웠다. 교사들은 참여할건지 말건지 의사만 밝혔고. 교직원연수도 아이들의 수업결손을 초래하는 것임에도 학운위를 통과해야한다는 말, 그때는 들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스승의 날 휴무를 결정하는 것이 학운위결정사항이었다면 애초에 두 번째, 세 번째 조사는 왜 했단 말이야. 귀찮게시리...
결국 체육대회가 있던 11일, 11시에 학운위를 열었다.(왜 굳이 체육대회가 있는 날로 날짜를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운영위원 말고도 학부모님들이 대거 왕림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학부모님들의 의견은 똑같았다. 진정한 스승의 날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선생님들과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가 한 자리에서 축하해야한다는 것, 다른 학교가 스승의 날 휴무를 하는 이유는 어떤 의혹을 배제하려는 부정적인 모습이므로 오히려 더 당당하고 깨끗하게 진행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건 '교사들의 용기'의 문제라고 했다. 이미 대다수의 학교에서 휴무 결정을 하였고 우리 학교 50명의 교사들도 휴무를 원하며 이건 다른 날도 아닌 '스승의 날'에 관한 것이니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주십사 이야기해도, 수업결손을 막기 위해서는 방학을 하루 줄이고 그날 휴무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해도 학부모들의 생각은 누군가 그 자리에 말뚝을 박고 묶어놓은 듯,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그 분'께서는 계속 '투표로 결정하자'고 보채셨다.
투표 결과는 4:6이었고 결국 우리는 월요일 등교한다.
궁금하다. 학부모님들은 정말 이 결과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 분들의 생각을 꽁꽁 묶어둔 걸까? 생각이 묶일 수 밖에 없었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결과는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