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운영위원회의가 끝나는 날이면 잘 마시지도 못하는 그 술이 고팠다. 보충수업, 특별보충, 여름방학 보충.. '보충'이나 '수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안건, 그에 대한 논의가 있는 날이면 더 그랬다. 1년에 두 세번은 서너시간에 걸쳐 결론이 빤한 회의를 해야했고 끝날 즈음이면 목에서는 쉰내가 나고 얼굴에 열이 오르고 다리에 기운이 쭉 빠지는 그런 날도 많았다.

오늘 아침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했던 유세의 내용처럼 첫 해는 정말 암것도 모르고 지나갔고 작년엔 또 어설프게 알아서 갑갑하고 한심하고 슬프고 괴로웠다. 이건 면역이 생기는 게 아니라 점점 무거워지는 그런 느낌. 그래서 다시는~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마음.

"한 번 더 하면 이번에는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는 말로 샘들의 마음을 샀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이 말을 내뱉고 나서도 맘 속으로 쓴웃음이 났다. 최선을 다한다... 내가 최선을 다할수록 싫어할 사람들도 많을텐데.. 善이란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일 수도 있는데.. 결국 바라보는 사람이 서 있는 자리-관점과 입장에 따라 판단기준이 달라지는 것이겠지만...

내 스스로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의견을 말 할 때나 회의장을 나와서는 개인적 감정을 배제해야한 다는 것, 그런 것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행동으론 잘 안되다)이제 학운위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 것이고 그 자리에서 더 많은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배우는 일만 남아있다.

고백하건데... 사람들 앞에서 "꼭!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해본 건 오늘이 태어나서 처음이다. 사람들이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  '나'의 진심이 그 누구에겐가 전해졌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고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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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2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6-03-2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 주신 님.. 원고는 어젯 밤 겨우겨우 마무리했구요.. 그냥 쭉~ 읽으려구요. ^^ 워낙 말 주변이 없어서... 운영위원은 같이 회의 들어가실 샘들이 든든해서 저야 뭐 이제 배우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암튼... 응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