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기면서 느낀건데... 새학년 학급 임원을 선출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게 잡혀있다. 우리 학교도 늦어도 내일까지는 학급조직표를 만들어 달라고 하니 휴일 빼고 나면 열흘 남짓한 기간에 아이들과 나는 반장과 부반장을 점지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격 요건이 학생회 규정에 나와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성적이지 싶다. 40%이내! 그래도 우리학교는 많이 완화된 거다.  물론 성적이 아이의 성실성을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하나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번 담임했을 때 성적 제한을 두지 않고 반장을 뽑았다가 1년 내내 내가 반장 노릇까지 해야했다. 다른 교과 샘들이 심심찮게 무시했던 그녀석 맘 상하지 않게 신경쓰랴, 서툰 반장 치닥거리하랴, 불만 많은 다른 샘들 눈치보랴 에구.. 많이 힘들었다. 가끔 그 때 결정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힘겨움은 나와 아이들이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을 키웠을 거라고, 우리를 알게 모르게 성장시켰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하긴.. 그렇게 자위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힘으로 버틸까 ^^;)

아뭏튼 오늘도 많은 일이 있었다. 조례시간에 선거관리 도우미 4명을 뽑고, 도우미에게 반장 부반장 자격조건을 게시하도록 하였으며, 입후보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반 아이들 10명의 추천을 받아오라하였다. 한 명 두명 부족하다며 교무실까지 와서 추천서를 받아가기에... 어라 전달이 잘 안 되나? 갸우뚱 하고 있었는데... 종례시간에 올라갔더니 모두 8명이 입후보하였다. 반장 후보 3명, 부반장 후보 5명. 아이들과 의논해서 반장 후보, 부반장 후보를 따로 입후보하도록 하고 각각 최다득표자를 선출하자고 했다. 홍보용 선거 벽보를 만들어 나눠주고 유세도 준비해오라 했다. 도우미들을 불러 투표용지를 주며 도장 찍고 잘라오라고도 했고.

잠깐 아이들에게 성적제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실은 애들아 40%이내라는 제한이 있는데 너희들 의견을 듣고 싶구나. 자 눈을 감고... 성적도 아주 중요한 자격요건이기 때문에 그것을 꼭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거기 때문에 다른 사람 신경 쓸 것 없단다. 그냥 자기 생각대로 손 들면 돼! 결과는? 5명쯤 손을 들었다. 결국 아이들이랑 합의하기를 반장은 다른 샘들 눈에 잘 띄니까 40% 정도에 얼추 맞추고 부반장은 성적 무시하고 뽑자! 반장 입후보자들의 성적이 다행히(?) 모두 조건을 만족하고 있었다. 상처받을 일이 없어서 다행!

유세와 투표는 내일 6교시, 내 수업시간을 잘라먹고 --; 하기로 했다.

 

2006학년도

2-10 반장, 부반장 후보자 추천기준 및 자격 조건


1. 앞으로 1년간 무단결석, 사고지각, 사고조퇴, 사고결과가 없어야 합니다!

2.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려고 노력하면 좋겠죠?

3. 남을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눈빛, 사려 깊은 마음!!

4.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 반을 사랑하며 친구들을 아낄 줄 아는!

5. 성적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늘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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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게시판에 8명의 추천서를 붙여놓고 어젠 홍보용 벽보를 부착하라고 했다. 6교시 드뎌 투표시간. 올라갔더니 선거관리 도우미들이 반장, 부반장 유세순서를 정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제한시간 2분. 한명 한명 나와서 맘속으로 준비했을 말들을 풀어놓았다. 약간은 부끄럽고 약간은 민망한 듯.. 그러나 모두 당당하게 '하고싶다'는 의견을 풀어놓았다.
결과는? 반장의 표수는 엇비슷하게 나왔고 부반장도 두 명만 좀 많았을 뿐 나머지는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당선소감을 발표하면서 마무리하고.. 담임의 잔소리를 좀 하고 그렇게 올 해 우리반 반장 ㅈㄷㅇ과 부반장 ㄱㅇㄹ, ㅇㅎㅈ가 탄생했다.
"꼭 하고 싶다"는 말... 참 듣기 좋았다.
학창 시절, 몇 번 안 되는 반장, 부반장 추천을 받았을 때 늘 '저는 못합니다. 사퇴합니다'로 일관했던 즈들 담임보다 훨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