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어떻게 사랑하지?
어른들의 생각이 달라지면 아이들도 달라집니다
  안준철(jjbird7) 기자   
오래 전에 담임을 맡았던 한 제자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는 지난 1월에 군복무를 마치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편지 내용을 보니 아마도 오랜만에 영어 공부를 하다가 제 생각이 났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1형식 2형식 설명하실 때 제대로 한번 들어서 공부 좀 해둘 껄 이런 후회가 좀 들었습니다. 평소 공부에 취미도 없던 제가 남들처럼 5시간 자면서 나머지 시간 공부에 매진한다는 게 쉽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공부해야하지 그런 공부요령 등 또한 2년 정도 해서 안 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들로 처음부터 마구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시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공부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나자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제자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살면 시간을 내어 영어 기초라도 다시 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인 모양이지요. 어쨌든 저는 편지를 보내온 제자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서둘러 답장을 썼습니다. 그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단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부 자체를 사랑하는 일이지. 모든 일이 그렇잖아. 좋아하고 즐기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늘게 되어 있지.'

이 편지를 받은 제자는 공부를 사랑하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조금은 이상하게 들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에 취미가 없고 아직은 세상 물정을 몰라 공부를 게을리 했던 과거 학창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 처지에 공부를 사랑하라는 말이 조금은 낯설고 한가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기 시작한 것은 편지를 보내온 제자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서였습니다. 뒤늦게 속을 차리고 대학에 가기 위해 도서관에 박혀 공부를 하는데 처음에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느라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어느 날인가 영어문장을 해석하던 중에 갑자기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흥미를 느낀 것은 영어 자체라기보다는 해석된 문장의 내용이었습니다. 영어독해 예문은 대체로 저명한 작가의 책이나 논문에 실린 명문장이었기에 사전과 씨름하며 어렵사리 문장을 해석하다보면 마치 흙 속에서 보석이라도 캐낸 듯한 그런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서너 시간 수면을 취하고 온종일 공부를 해도 피로한 줄을 몰랐던 것이지요. 그 후로는 차츰 다른 과목들도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흥분과 희열 속에서 날밤을 세우곤 했습니다.

저는 명절 때 어린 조카들을 만나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공부를 사랑해보라고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은 너무 당연하고 너무 익숙하다보니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새고 맙니다. 그러니 하나마나한 말이 되고 말지요. 하지만 공부를 사랑하라는 말은 어딘지 이상하고 낯선 표현이기에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부를 사랑하라고? 공부를 어떻게 사랑하지? 이렇게 말이지요.

이런 심리적인 효과도 노릴 수 있지만, 지식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공부를 오래 지속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치 마라톤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마라톤 선수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과도 같은 이치이지요. 실제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상위권을 유지해오던 학생들이 고3이 되면서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십중팔구는 공부 그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한 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짧은 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아도 어떤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가령, 운전면허증을 딴다든지 타이핑 속도를 늘린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십 년 이상 공을 들여야 하는 학교 공부는 일류 대학입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의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일이 년도 아니고 십 년 이상을 공부에 몰두해야 하면서도 공부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가정했을 때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결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즘 대안학교에 대한 말이 무성한데 대안학교와 일반학교와의 차이점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를 사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대안학교의 최대 관심사라면 일반학교에서는 그런 배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공부 그 자체보다는 시험 점수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제도권 학교의 현실이지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한 삶을 누리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오랜 기간 학교에 갇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으니까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로 하여금 공부를 사랑하게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나 교사의 생각이 달라지면 아이들도 달라집니다. 얼마 전에 저는 올해 대학졸업반이 되는 아들과 잠깐 짬을 내어 산을 찾았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아내의 부탁도 있고 해서 임용고사를 눈앞에 둔 아들에게 최선을 다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을 할 뻔하다가 다행히도 이렇게 말을 고쳐서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열심히, 아니 공부를 사랑해라. 너무 임용고사만 생각하지 말고 그 후에 네가 학교에서 만날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공부해라. 네가 배우는 지식이 결국은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니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네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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