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2

 

                                              - 김지하

 

 

노을은

흰 벽 위에서 더는 붉게 타지 않고

하늘은

흰 손수건에 이젠 푸르게 물들지 않는다

정이월 뜨락에

하우스에서 옮겨온

활짝 핀 튤립꽃을 보다

소름끼쳐 너무 무서워

문 닫아버리고

문고리 걸어 몇 번이나 다시 잠그고

솜이불 속에 숨어 식은 땀 흘리며

몇 날 며칠을 앓았던가

거리로부터는 지축 울리는 쇳소리 경음악 소리

플라스틱이 플라스틱 스치는 서쪽 바람 소리

싸우고 헤어진 그 젊은 애 그 번들대던 눈

입 속에서 콧속에서 퍼지는 사리돈 약내

시퍼런 동백잎 위에 파열하는 은빛 강철의 햇살

아아

여린 살갗으로는 이제

공기 속에마저 더는 설 수 없구나

애린

애린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