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이란 새삼 무엇인가. 고고학과 문헌학, 말을 바꾸면 과학과 또다른 과학이 마주쳐 해석학의 공간을 낳는 장소가 아닐 것인가. 숨쉬고 있다는 것은 이를 가리키는 것.  문제는 여기에도 국민국가주의가 얼마만큼 스며들고 있는가에 있다. 이 비석을 둘러싸고 한중일 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에 놓인 것은 국민국가주의였다. 한갓 근대의 소산인 이 사상을 고대로 소급해 간 것이었다. 그렇다면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저 고약한 국민국가주의를 벗어날 길은 없을까. 맨눈으로 고구려를 볼 수 없을까.그 맨눈으로 "아, 고구려"라 할 수 없을까. 종족의 문제를 통째로 국민국가주의 쪽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광개토대왕비는 때때로 숨이 막힐 뻔도 했으리라. 저 장군총의 아스팔트길, 채석장을 방불 케하는 도굴 현장, 총살 직전에 있는 도굴꾼들도 그러한 현상이리라. 아, 이 위대하고 굉장한 국민국자주의여.

김윤식, [샹그리라를 찾아서], 2003. 12. 1,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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