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앞뒤로… 영원히 사랑하고파 ^^

엉뚱 명랑한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틴은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리처드에게 호감을 느껴 적극적으로 접근하지만, 갓 이혼 당해 패닉 상태에 빠진 리처드는 그녀의 갑작스런 호의를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없다. 크리스틴과 리처드가 어설프고 서투르게 새로운 사랑을 향해 조심조심 다가가는 동안 리처드의 십대 아들 피터는 성적 호기심이 가득한 동네 소녀 헤더와 레베카의 오럴섹스 경쟁에 실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고, 여섯 살 난 둘째 아들 로비는 인터넷 성인 채팅방에서 수위를 넘는 과감한 대화로 건너편 상대를 자극한다. 이에 로비의 채팅 상대인 외로움에 사무친 40대 커리어우먼 낸시는 로비를 완벽한 섹시가이로 착각하고 일회용 섹스를 제안해 기대에 부풀어 약속장소에 나가는데 과연 이들의 만남은 어떻게 될까..?

먼저 다가가느니… 차라리 외롭고 말아?
: 디지털 시대, 우리는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영화의 초반부에, 노일들을 위한 대리운전을 해 주는 크리스틴이 운전하던 중 금붕어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얹고 가는 자동차를 발견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금붕어를 싣고 가는 차 앞을 일정속도로 가로막으며 운전해 금붕어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결국 비닐봉지는 떨어지고 크리스틴은 금붕어의 마지막 순간에 조의를 표한다. 이 장면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점점 엷어져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아쉬움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갈수록 생소하게 느껴지는 요즘 그 순간만큼은,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가 같은 긴장과 같은 바람, 같은 안타까움을 겪는 짧지만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다.

금붕어 장면의 강한 여운에서도 나타나듯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이런 단절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명상집과도 같다. 직접 얼굴을 보는 만남이 힘들어지고, 사람들은 온라인 채팅방이나 행위예술을 통해서만 만나고 이것들조차 실패하면 공상 속으로 빠져들어버리는 지극히 개인화된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 어느 곳과도 다르지 않게 평범한 미국의 소도시, 젊은이도 나이 든 사람도 점점 파편화 되어가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에서의 소통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줄라이 감독은 놀라운 직관과 섬세함, 그리고 기막힌 유머로 이런 주제에 능숙히 다가간다. 관객들이 배꼽을 잡는 여섯살짜리 로비의 ‘앞뒤로 한다(poop “back and forth”)라는 표현과 ))<>(( 라는 이모티콘은 인터넷 채팅문화를 단박에 표현하는 은유로 쓰이면서 미란다 줄라이가 지닌 특유의 참신하고 독창적인 관찰력이 얼마나 유머러스 한가를 보여준다.

아이들이 등장하고 화사한 화면과 싱그러운 음악이 내내 흐르는 이 영화는 일견 귀여운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줄라이는 무조건적인 낙천주의에 기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녀가 바라보는 디지털 시대의 삶이 무조건 시니컬하게 나타나는 것만도 아니다. 인간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기형적인 욕망을 풍자하고 있지만 이 영화가 지닌 톤은 냉소라고 보기엔 너무 밝고 따뜻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유쾌하고 명랑한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사랑스러운 텍스트로 읽히는 지점이다.


당신이 꿈꾸는 찬란한 우주는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있다
: 불확실한 삶을 응시하는 당차고 유쾌한 시선


이 영화는 외롭고 상실감에 젖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매그놀리아> <크래쉬> <숏컷>의 전통을 잇는다. 이 전통대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당면과제는 영화가 끝나는 무렵에도 해결되지 않고 감독도 굳이 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단절된 일면을 그린 요즘 영화들이 주로 견지하는 냉소적이고 건조하게 삶의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태도와는 달리 미란다 줄라이는 아이처럼 순진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크리스틴은 귀에 양말을 걸거나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엉뚱한 말을 건네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참을 수 없이 썰렁해진 상황도 자기친화적으로 바꿔버리는 능력을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매우 평범한 소도시의 일상일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어느 순간 이 흔하고 진부한 일상이 한 편의 시가 되는 진귀한 경험을 맛보게 된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특별한 점은 일상에서 남다르게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능력이 이제까지 본 다른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훨씬 탁월하다는 점인데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들이 이 영화에서는 이상하게도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탈바꿈하고 관객은 예측하지 못한 장면에 마음을 푹 빼앗겨버리게 된다.

이는 미란다 줄라이 감독이 일상이 지닌 얄궂음보다는 그 안의 부드러움과 유머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함 속에서 헤메는 주인공들은 어딘지 좀 무능해보이고 나약하기 그지없지만,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노력이 당차고 유쾌하기까지 한 감동을 준다. 새로 관계를 시작하려는 크리스틴과 리처드는 훗날 또 한번의 상처를 서로에게 주고 이별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직 반도 안왔기” 때문에 즐거운 관계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차 있고, 설령 관계의 유한함을 알려주는 이정표인 “아이스 랜드”를 만나다 해도 적어도 이전처럼 손에 불을 지르는 유아적인 행동은 거듭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해준다.


어른들은 아이처럼 굴고, 아이들은 어른처럼 말하고…
: 성숙한 척 하는 아이들과 퇴행적인 어른들의 기묘한 공생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공식보다는 모두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여 결정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충동이나 감정을 관리하는 방법에 점점 더 서툴러지는 것이 현대인들의 특징인 것일까… ?

모든 매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채 이해하기도 전에 어른의 말을 가져다 사용하고, 반면 어른들은 아이처럼 서투르게 행동하고 후회하고 당황하기 일쑤다. 아내에게서 버림받은 남편은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의 남자친구가 어때 보이냐며 두서 없는 말을 지껄여 아이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당하고, 자기 손에 불을 지르는 무모한 자해를 저지르기도 한다. 겉으로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무표정으로 일관된 건조한 삶을 사는 큐레이터는 사무치는 외로움에 인터넷 채팅방을 기웃거리다 자신을 성적으로 완벽히 자극하는 남자(?)를 발견하지만 그 상대가 여섯살 꼬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리처드와 크리스틴 또한 그 어느 영화에 등장하는 커플보다도 서투른 구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성(性)에 적극적으로 현혹되는 것은 아이들의 몫으로 그려진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소도시의 일상에는 열 여섯 살 소녀들의 오럴 섹스 경쟁에 자원하는 열네살짜리 남자아이가 있고 또 인터넷 성인 채팅 방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컴퓨터 저 편의 상대를 성적으로 자극시키는 여섯 살 짜리 꼬마도 있다. 또 열 살짜리 여자아이는 미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주겠다며 생활용품들을 자신만의 혼수함에 모아두는 집착을 보인다. 항상 킬킬대고 능숙한 척 하지만 사실 겁 많고 어릴 뿐인 십대 헤더와 레베카는 서로를 부추기면서 잡지나 영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대로 ‘연기’ 하면서 섹스를 실험해본다.

하나도 성숙하지 않은 채 방치될 뿐인 아이들도, 여전히 자신의 감정 하나 다스릴 줄 모르는 어른들도 디지털 만능의 시대에 살면서 모두 저마다 우울하고 고독하고 소외에 시달린다. 이들의 외로운 행동들이 다른 영화에서라면 자기파괴적 행동이나 자살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미란다 줄라이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상한 유머로 절망적인 상황이 서서히 밝아지는 톤을 만들어간다. 그녀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에 냉소를 띄우거나 투덜거리지 않는다. 삶이란 명랑하면서도 우울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가끔 끔찍하기도 한 것이기에..



2006. 2. 3. 동숭동 아트시네마. 보고싶은 영화이긴 했는데 서울까지 가서 보게될 줄이야.. 아트시네마가 아트홀이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95년이었나... 개관하고 아트홀에서 아주 훌륭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무료상영하는 등 좋은 아이템으로 쉽게 예술 영화에 다가갈 수 없었던 유학생에게 문화를 접하는 기회를 주었다. 그곳에서 넬슨 만델라가 출옥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상황을 그린 다큐도 보고 아직 뜨기 전 윤도현도 보았다. 장발을 하고 "나는 타쟌~" 노래를 했었지.. 임용시험 두번째 떨어지고 나서는 그곳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향기'를 보았다. 1/3은 졸았으면서도 극장을 나오면서 '그래, 체리향기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하다. 다시 도전하자'라는 용기를 갖게 된.. 내게 그곳은 아주 감사한 공간이다.

거의 10년만에 들어선 그 공간은 너무나 달라져있었다. 그전에 어땠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어쨌든 훨씬 더 상업적이 되어버렸다는 느낌. 6시 50분 영화였는데... 친구랑 극장에 들어서니.. 예전의 이층짜리 커다란 공간은 간 데 없고 아담하게 꾸며진 소박한 극장. 오른쪽으로는 창 밖으로 소담한 장독대가 보이도록 꾸며놓았다. 영화가 시작될 때 자연스럽게 커텐이 드리워지도록. 좌석에는 그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라는 표시인지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재미도 있었지만 조금 유치한... 자본은 유치하다.

 

어려우면서도 좋은 영화라는 느낌이다. 좋은 영화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지 영화를 보기 전과는 달라진 나의 내면을 확인하게 하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이 영화의 대화의 방식은 시를 읽는 듯하다. 알송달송하다. 직접적인 듯 하면서 우회적이고 우회적인듯 하지만 아주 노골적이다.

미앤 유앤 에브리원.. 그들은 모두 허망항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스스로가 의식하든 그렇기 못하든 '소통'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소통은 일방적으로 나만의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나, 소통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유한하다는 결함을 늘 안고 있다.

크리스틴은 리차드를 첫눈에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느낀다. 그건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말로 표현된다해도 상관없다. 실제로 그들의 대화는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알아듣기 힘들지도 모른다. 어쨌든 둘은 통한다. 그 가능성하나에 크리스틴은 확신하고 리처드의 냉냉함을 무릅쓴다. 용감하다. 그 두려움 없는 돌진으로 결국 나중에는 '소통'에 성공하는..

결국 '소통'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울러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과 선택한 것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소통'이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으며 삶에는 또 다른 '소통'이 반드시 있다는 희망! 그 힘으로 …. ))<>(( …. 앞뒤로… 영원히

이 영화가 있어서 이번 서울여행은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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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2-0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들었던 장면이 몇 된다. 크리스틴이 처음 리처드를 찾아가 우연을 가장해 주차해둔 곳까지 함께 걸으면서 주고 받았던 말들... 크리스틴을 집으로 초대한 리처드가 둘째아들 로비가 낙서해서 엉망이된 새 사진의 액자를 나무에 걸고 그들이 소통에 성공하는 장면. 엄마는 컴퓨터 고치는 소리라고 설명한 그 '소음'이 실은 버스를 기다리는 아저씨가 시간을 보내는 소리, 가로등에 동전-또는 돌맹이 두드리는 소리였고.. 그것이 또 로비에게는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소리가 되는 장면.. 아! 크리스틴의 작품이 소개되는 장면도 신선하다. 사진과 나레이션으로 추억과 사랑과 죽음이 완성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