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애인은

                

내 애인은 오월대 전사

피가 고여 흐르는 이 땅의

눈부신 꽃불이다.

최루탄 자욱한 거리에서

일제히 타오르는 횃불

나는 그의 등 뒤에서

진격의 나팔을 높이 부는 나팔수다.

쓰라린 눈을 들고

전사의 무리 속에서

나는 그대 모습 쉽게 찾고

최루탄 총성 속에서도

그는 내 나팔소리 선명히 듣는다.

막걸리 한 잔에도 쉽게 취하고

라면 한 그릇에도 감사할 줄 아는

우리는 이 땅의 아들딸

피멍든 조국의 상처에

뜨거운 입맞춤으로 달려 나가는

내 애인은 오월대 전사

나팔소리 드높이 울리는

나는

전사의 애인이다.

 

[쑥고개 편지].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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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8-2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다닐 때까지 정리해둔 시 파일에서 발견한 시이다. 종이 아래에 선명하게 이렇게 찍혀있다. '비 개인 토요일의 나른한 아침에 난희에게 적다. 정재가'

정재.. 대학동기인 그녀는 당시 1기였던 우리과 총대였다. '노란 셔츠의 사나이'를 잘 부르고 당시만해도 자주 있었던 데모판을 열심히 뛰어다니던... 아마도 학과사무실에서 조교의 보조를 하고 있었나? 막 들여온 신형 타자기로 열심히 타이핑 연습을 하던 정재는 어느 날 불쑥 나에게 이 시를 건네주었다. 짜다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면서 학생운동은 무서워서 늘 피해다니던 학과 일에도 민족과 겨레에도 노동과 노동자에게도 무관심했던 나에게 이 시는 서늘하게 다가왔다. 이 시어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정재는 나에게 이 시를 주었다.

정재는 여군이 되었다. 여자가 취직하기는 정말 어려운 시대였다. 서울에서 이런 저런 공부를 하고 있던 우리에게 용산에서 훈련받는 중이라며 불쑥 자취방을 찾아왔었다. 그 후엔 포천으로 배치받고... 그녀의 아파트까지 찾아가서 놀던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한명씩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정재도 멀어졌다.

2001년, 방송통신대 중문과 2학년 출석수업을 받으러 온 정재를 다시 만났다. 임신 5개월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서울에서 결혼해서 첫 출산을 걱정하는 평범한 여군이라고 했다. 출산 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한다고, 신랑이 거기 있다고..

그녀가 지금은 병원에 있단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 홀어미니의 맏딸인 그녀. 작년에 교퉁사고를 당했단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얼른 연락해봐야한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심상이최고야 2005-10-0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구나....시를 즐기는 해콩님! 어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