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같은 조카녀석.. 방학 중 일부를 할애해서 꼭 같이 놀아주고 싶었다. (언니 얘기로는 조카가 나랑 놀아주는거라지만.. - -;) 중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 녀석이 갑자기 추리소설에 관심을 보이며 책을 사달라하였다. 순간 해운대에 있는 추리문학관이 생각났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 가보지 못한.. 추리 소설가 김성종씨의 개인 도서관(문학관)이다. 달맞이 고개에 있다니 아마 바다도 보일 것이고 입장료를 내면 차도 준다고 하였고 교통이 다소 불편하니 북적대지도 않을거고.. 책구경도 하고.. 가봐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은 하늘도 너무 맑고 별다른 일도 없고.

학원 다녀온 조카를 얼렁 밥 먹이고 설겆이 하고 그 짧은 시간에도 컴앞에 붙어있는 녀석을 떼어내서 길을 나섰다. 초딩 1학년인 둘째 조카가 같이 가겠다고 떼 쓸까봐 '형아 병원간다~' 뻥도 치고.. 간식도 준비했다. 녀석의 만성적인 비염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가 31번을 탔다. 해운대 전신전화국 앞에서 마을버스 10번을 타고 내렸는데 바로 추리문학관 앞! 입장료 지불하고 1~3층을 둘러본 후 3층에 자리잡았다. 우리 말고 손님?은 한 명 뿐! 일 도우시는 분께 여쭤봤더니 하루 이용객은 30명(그나마 요즘 방학이라 많은 편이란다. ^^;) 책은 기증 받은 것도 있고 '선생님' 개인 것이란다. 그 '선생님'은 4층에서 자료를 모으며 소일하고 있었다. 으아~ 소설가의 자료라는 것은 어찌나 방대한지 유명한 중앙지를 다 받아보고 지방지도 두 종류가 눈에 띄였다. 스크랩을 했는지 어떤 기사는 잘려나가있었고...

수줍음 많고 조금 내성적인, 그 시절 내 모습을 영판 닮은 우리 조카는 [반쪽이 딸 학교 가다]를 빌려와서 내 앞에서 ㅋㄷㅋㄷ거리며 열심히 보고 있다. 속독법인지 뭔지로 읽는다면서 내가 반 권 읽은 사이에 한 권을 다 읽었다. "꼼꼼하게 읽어야죠!" 잔소리 한 판 하고..

홍차를 홀짝거리며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식객]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6시면 폐관이다. 챙겨서 나오니 바로 버스가 온다. "00아 바다 너무 예쁘다아~~"  "(시큰둥하게)어디?"  "- -" 남자아이들은 너무 무덤덤하다. 하늘이 저렇게 높고 바다는 또 저렇게 넒은데.. 그 색깔은 또 어떤가? 하긴..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기에는 좀 이른 나이긴하다.. 해운대 전신전화국 앞에 다시 돌아온 시간이 6시 30분경.. 영화나 같이 볼까 하다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바로 집에 오려고했다. 그러나 요놈이 오늘 내가 물주인 걸 아나보다. 저녁을 먹고 가잔다. 나는 집밥이 좋은데... 31번 종점 근처에 그 옛날부터 있었던 가마솥국밥! 그렇지 않아도 올 때부터 그걸 맛보이고 싶었다. 그 국밥집.. 추억이 많다. 나도 언니도 초등학교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국밥집이다. 대학 다닐 때도 가끔 들렀던.. 주인이 바꼈는지 어떤지는 몰겠지만 어쨌든 내게 익숙한 무엇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소고기 국밥 둘을 시켜 [식객] 흉내내는 대사를 해가면서 맛나게 먹었다. 정말 00이는 어릴 때부터 못먹는 것이 없다. 이것도 나를 닮았다.

다시 31번 탔다. 타자마자 녀석은 잠이 들고.. 내려서 시장통을 통과하면서 뭔가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00이도 "이모, 우리 저거 사먹자" 핑계김에 찐빵이랑 찹쌀모찌랑 더 먹어버렸다. 그러고도 이 녀석은 집에 와서 버섯국에 밥도 말아먹었다. 왜 여전히 3번인지 이해가 안 간다.(얘네 학교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한단다.)

요가 빼먹고 조카랑 데이트!! 즐거운 하루였다. 조금 더 크면 이 녀석, 친구들이랑 놀러다닌다고 나는 완전히 찬밥 취급할텐데 더 열심히 놀아줘야지.. (놀아달래야지.. - -;)

아무래도 새벽에 요가하러 가야지 자꾸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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