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미안해요.
그런데 샘..
내가 예민한 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지만
직장에서 남선생님들이 젊은 여샘들에게 반말 쓰면서 명령하듯이 이야기하는 게 너무 싫어요.
그것이 '친밀함'의 표현이라면 더욱 경어를 써야하는것 아닐까 싶어서요.

자꾸 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말들만 생각나서 이쯤에서 그만할께요.
그저 아침부터 샘 잘못도 아닌 일, 샘이 어찌할 수 없는일에
반말 쓰는 사람에게는 말 못하고 괜히 샘한테 뭐라 한 것 같아 미안해서요.

그래도 샘..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쉽고 편하게 반말 하다보면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 남샘들 자꾸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젊은 여샘들에게는 이름 찍찍 부르고 반말해도 된다고..
우리가 앞으로 들어올 후배교사들에게 그런 학교 풍토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선배교사들에게 예의를 갖추어야하는 것처럼 후배교사들도 챙겨야하잖아요.
학교는 조금씩 더 민주적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이야기되는 분위기여야 하는 거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샘한테
나이 많다고, 남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반말하는 거 싫어서 말이 길어졌습니다.

샘께서 좀 더 정중하게, 거리를 두고, 공적으로 대한다면
상대방의 태도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미안해요,
선배교사로서 암것도 해준것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참견해서..

그래도 내 일 아니라고,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척 하는 것보다는 낫죠?

**샘의 답글

고마워요. 좋지 않은 것은 고쳐가야지요....
언니가 미안해 할 것이 아니지요, 바른 것을 말해 줘서 고마워요...그런데 제가 용기가 없어서 좀 그러네요~ 열심히 노력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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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6-2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다. 학교에서 가끔 어떤 남교사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교무실에서 젊은 여교사의 이름을 찍찍 부르고 반말하고 그런다. 동료교사로서 **야~ 이렇게 부를 수 있을까? 아무리 나이가 많고 선배교사이고 또 보직교사라 하더라도..
친근함의 외피를 쓰고 빚어지는 인정주의의 부작용이 차고 넘치는 이 사회에서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형~',"** 형님"이라고 남교사들 사이에 호칭하며 둘 사이의 친함을 팍팍 드러내면서 은근히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거나, 술자리에서 그들만의 판을 짜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 많이 보았다.

나는 학교의 이런 가부장적인 남성 문화가 너무 싫다.
그래서 가끔 예민한 날이면 그냥 두고보질 못하겠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그 남교사들에게는 결국 한 마디도 못하고 이렇게 약한 곳에 대고만 뭐라고 하는 내 모습도 한심하다.

학교에서 막강 권력을 휘두르는 이 권력지향형의 중장년 남교사들..
그들에게 똑 부러지게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내게 올까?

글샘 2005-06-2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딱 제 이야기네요. 단 한 가지, 막강 권력이 없는 것만 빼면...
저도 젊은 선생님들 친근함을 가장해서 이름도 부르고... 형님도 부르는데...
근데, 저도 전혀 안 친한 넘들이 내 이름 막 부르면, 정색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때 그때 달라요~~~

해콩 2005-06-2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갑자기 당황스러워집니다만.. 정말로 친밀한 사이에 혹은 친밀하고 싶은 사이에 주고 받는 접근성 멘트의 경우는 당연히 제 이야기에서 제외됩니다... ^^ (저도 가끔 말끝이 짧아요. 서로 공감하는 친한 사이에는.. 그런데..저 분들은...)

해콩 2005-07-0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께서 올려주신 글...
(한겨레에 실린 글이었군요. 김소희 기자는 '오마이 섹스'라는 컬럼으로 잘 알려져있죠.. ^^::)

나, 미스 김!

새파란 여자애가 기자라며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영 신기했던 우익의 대부 고 오제도 변호사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미스 김'이라고 불렀다. 호칭에 대한 강박이 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라 "김 기자라 불러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는 약간 당황하더니 나를 '미스김 기자'라고 불렀다. 오 변호사가 세상을 떠난 뒤 나를 그렇게 불러준 사람은 없었다. 한참 뒤 나를 놀랜 호칭은 '김 여사'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정계 은퇴 전 반주를 동반한 기자들과의 밥자리에서 나를 이렇게 부른 일이 있는데 그 눈길이 끈적하기보다는 되레 낭만적으로 느껴져 제풀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내가 벌써? 취재현장에서 불리던 내 호칭은 다양한 변주를 했다. 미스 김과 김 여사 사이에는 '아가씨' 가 있었고, '김양'과 '각시'에 이어 '아줌마'도 등장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자기들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보고, 그렇게 불렀다. 남을 부를 때 직함만큼 편리한 게 없다. 그런데 직함을 무색케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나이와 서열이다. <한겨레21>취재편집팀에서는 한때 호칭 빼고 성 빼고 위아래 가리지 말고 이름만 부르자는 아이디어가 제안됐다. "경태! 기사 보냈어요" "창석은 또 밥 먹으로 나갔어요" 이렇게. 선배가 그렇게 부르면 괜찮지만 후배 처지에서는 영 어색했다. 그래서 이름에 이어 쉬지 않고 단숨에 다음 문장을 붙여서 말하곤 했다. "수병아무개가쓴그책어제봤는데,(참던 숨 내쉬고) 재밌었어요" 이런 식이다. 이런 '호칭의 민주화'는 한 며칠 쓰이다 숨을 참지 못한 대다수 구성원들의 '투항'으로 사라졌다. 나이와 서열을 간단하게 뛰어넘는 것은 내 호칭의 변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별이다. 가끔 사무실에서 일하다 "기자님 좀 바꿔주세요"라는 전화를 받는다. "예 말씀하세요"라고 한다. 둘 중 하나는 "얘기(혹은 제보)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거기 기자 좀 바꿔주세요"라고 다시 말한다. "예, 저도 기잔데요"라고 하면, 잠깐 침묵 뒤,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시 전화하겠다면 끊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이런 제반 조건을 이용한 일이 있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짜고짜 "야, 이 한걸레야" 하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에게다. 난 '대대거리는' 말투로 "지금여, 다 취재하러 나가셨거등요? 전 옆방 아르바이트 학생이라 암것도 모르거덩요? 이렇게 대꾸한다. 이 대목에서 독자 서비스 정신을 들먹이고 싶진 않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한참 마감이나 취재 중에 그런 전화, 서로를 위해 좋지 않다. "저를 여자로 보지 말고 00로 봐주세요"하는 유의 얘기들은 이젠 '뒷담화'소재다. 여성이 대단히 드문 시절에 만들어진 사회적 강박이다. 왜 여자를 여자로 보지 말아야 하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 지루하다. 여자 기자가 많아진 세상, 나이와 서열,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는 세상, 그래서 호칭에 대한 강박도 사라져버린 세상이 난 좋다. 미스김도 김 여사도 좋다. 뭐라 불러도 좋으니 나를 부디 기자이자 여자로 봐달라. 물론 굳이 고르자면 미스 김이 제일 좋다.
- 한겨레 21 (2005.5.31-취재뒷담화 김소희 기자) 2005-06-26 오후 9:23:00

해콩 2005-07-0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내 생각엔 아직도 여전히.. 전문직 여성에게도 그 직업으로 다가서기 보다는 그저 '여성'으로만 다가오는 남성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여성이 하나의 여성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봐지기를 원하고, 평화롭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여성성이 긍정받는 세상이 오기를 원한다. 그러나.. 최소한 여성인 내가 느끼기엔..아직도 '처녀'라는 말이 '교사'라는 단에 앞에 붙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흠... 실은 처녀라는 말 앞에 한 글자가 더 오는 게 보통이다. '노'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