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으로 있는 김 진숙이라는 사람입니다.
철새는 그의 노동력 만큼만 날지만 문명의 이기라는 남의 노동력에 의지해 주로 이동하는 저는 어떤 날은 새보다 더 많은 거리를 옮겨다니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제가 만나는 노동자들은 대충 두가지 부류입니다.
하나는,파업을 안할 때도 "해골 두쪽나도 지킨다~"라는 라는 파업가를 들으면 빈속에 소주 첫잔을 부을 때처럼 가슴에서 불길이 확 땡길린다는 종류와,파업을 할 때마저도 노래가사에 '해골'같은 말이 꼭 들어가야하나 껄쩍지근하다는 종류.
지난 금요일에 만난 마산 예술노조 동지들은 전형적인 후자입니다.
상부구조는 억대를 호가한다는 악기와 더불어 우아하기 짝이 없는데 하부구조는 전혀 예술스럽지 못한 철저한 이중성.
저는 이런 사람들 종종 봅니다.
모이는 시간은 저녁 8시라고 공지해놨는데 아마도 10시나 돼야 행사가 시작될 수 있을거라는 지회장의 얘기에 제가 두 세번은 아마 물었을겁니다."왜 그렇게 늦어여?" "일찍 오는 사람도 있지만 다 모이면 그래 될껍니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업장도 아니고 3교대 사업장도 아닌데 예술가들이 밤 10시나 돼야 모일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채로,마침 부산에 집이 있는 예술가의 차에 얹혀서 창원으로 갔습니다.
이 예술가,휴대폰 벨소리도 정말 크래식적이었고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는 도대체 무슨 얘기가 합당할까 고민스러울 만치 차안의 음악소리도 예술적이었습니다.
한 5분은 점잖게 가다가 견디질 못하고 수정터널 안에서 결국은 제 방식대로 살기로 합니다.
"왜 그렇게 늦어여?" 드디어 음악소리가 줄어들고 "예?" 예술가가 묻습니다.
"아니,저녁도 모여서 먹는다메 왜 그렇게 늦게 모이냐구여?"
"아,예~.레쓴 마치고 모이면 그래 되거든예"
이 예술가들 마산시립교향악단에서 받는 한달 임금이 70만원이랍니다.오로지.
잔업이 없으니 잔업수당도 없을테고 담임이 아니니 담임수당도 없겠지요.
그래서 자기들끼리는 인간을 두 부류로 분류한답니다.
70만원으로 먹고 사는 사람과 못 먹고 사는 사람.
못 먹고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다른 짓을 해야 할거고,그 짓이 끝나는 시간이 대충 밤 9시가 넘는다는거지요.투잡스!
다른 짓의 종류는 대부분 레슨인데,그나마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같은 말하자면 국영수는 건데기가 있지만 트럼펫 호른 같은(이밖에도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 분류해가며 몇가지를 더 불러줬는데 못 알아들었음) 비인기 과목은 국물도 없답니다.
예술가는 이슬만 먹어도 살 수 있지만 탁란을 한 것도 아니건만 그의 새끼들은 우유도 먹고 기저귀도 차야 하기 때문에 야간에 경비일을 하는 예술가도 있답니다.
어려서부터 그 악기가 그냥 너무 좋았고 꿈에서도 그 악기를 불고 있으면 너무 행복할만치 그냥 좋았고 좋아하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대부분은 유학도 갔다오고 빵빵한 실력에 전문가라는 자부심까지 갖췄으니 그 일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답니다.
우리가 노동자인가.그 질문에 몸은 천번 만번 동의하고 마음은 껄쩍지근한 채..
2003년 설립 초창기만 해도 전 단원이 조합원일 만큼 좋은 날도 있었답니다.
제가 겪어보면 초창기에 그만큼 분위기가 좋았다는 건 그만큼 불만이 컸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그 우아하고 자존심 강한 정신적 브라만들이 노동자라는 이 사회에서 불가촉천민의 취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 대열로 스스로 하방할 생각을 다 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진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 때 자신들에게 닥쳐올 탄압을 주로 걱정하지만 이런 부류들은 계급적 갈등을 참 많이 겪습니다.쓸데없이..
먹고 살기 고달픈 이들에게 봄날은 참 짧습니다.
먼저 합창단에서 부터 오디션이라는 복병을 만난답니다.
오디션은 노조를 만들기 전부터 있어왔는데 노조 설립 이후엔 왠지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더랍니다.
노조활동에 열성인 사람이 피보는 것같은..
그런 분위기는 악단에서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는군요.
그러나 아무리 확연하면 뭐합니까?심증은 무궁무진한데 물증이 없으니..
오디션이란 게 마산시에서 위촉한(위촉의 권한을 가진 이들은 음악에 전혀 문외한인)3명의 전형위원과 지휘자의 전권에 의해 행사된답니다.
전형위원들이 있긴 하지만 오디션 자리에서 새파랗게 떨고 있는 이 파리목숨들의 생사 여탈권을 거머쥔 건 주로 지휘자랍니다.
지휘자가 고개를 갸웃한다던지 입꼬리를 살짝 아주 살짝 올린다던지 하면 영락없이 탈락하는..
그의 이상 야릇한 행동은 노조간부의 순서에서 주로 목격이 되는데 그렇다고 "얌마! 니 와 모가지 비트노?" 라거나 "조디 가마이 안두나?"라면서 멱살을 잡을 순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지난 번 악단 오디션을 15명이 봤는데 8명이 탈락을 했고 지회장과 그의 마누라를 비롯한 핵심간부가 다 짤렸답니다.
쪽 팔리게 징계해고도 아니고 실력미달로..
그래서 노조 집행부를 새롭게 구성했는데 이번에 새로 지회장이 된 분은 작년에 노조간부 하다가 오디션에서 짤리고 93일인가 4일인가를 천막을 치고 투쟁을 해서 겨우 복직을 한 사람이랍니다.
이 노조 제가 볼 땐 복직투쟁하다 날 샐 조직입니다.
어떤 사람은 조합원일 때는 81점을 받았는데 탈퇴를 하고나서는 89점을 받았답니다.(80점 이하면 탈락,90점 만점)
근데 이게 얼마나 웃기는 거냐 하면 처음엔 자기가 조합원이라 불이익을 받는다 생각했는데 89점 받고 생각해보니까 그날 자기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더래요.
누가 노조를 탈퇴하라고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공권력이 투입된 것도 아닌데 이렇게 5분의 4가 노조의 대열에서 지발로 이탈하게 됩니다.
다음 날 첫차를 타고 인천을 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자꾸 보채는 저 때문에 밤 9시 40분이 되어서야 입교식도 없고 그 흔해빠진 사천만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도 없이 열세명이 모여서 시작을 하면서 지회장이 인사말을 하는데 첫마디가 그렇습디다.
"오늘 또 세명이 탈퇴를 해서 우리는 이제 스물네명 남았습니다."
나중에 끝나고 물으니 오늘 탈퇴한 사람들은 부산시향에 면접을 보러 가는데 혹시나 마산에서 조합원이었던 게 뽀록날까봐 미리 손 씻고 간 거라고..근데 결국은 뽀록날 거라고..워낙에 이 바닥이 좁은 바닥이니까..그래서 그 사람들은 욕할 수도 없다고..
백여명의 조합원이 이제 스물네명 남은 조직..
누군가 천막을 치고 있으니 버리고 가지도 못하고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은 그 천막에 내가 앉아있어야 하는..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희망이 아니라 애물단지 근심덩어리가 된 조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도 전망이 안보이는 조직..
이제 스물네명이 열네명이 되고 열네명이 네명이 되고 그 네명이 결국..비굴하게 무릎 꿇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장렬히 전사하고 싶은 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조직..
탈퇴한 사람들과 미처 그걸 하지 못한 사람 사이엔 같이 밥도 안먹고 말도 안한다는 조직..
자기들이 레슨을 하면서 가르치는 아이들이 결국은 자기들과 똑같은 길을 걸어갈 생각을 하면 죄스럽지만 그래도 그런 얘기를 솔직하게 하면 그마저도 밥줄 끊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없다는 조직..
그러면서도 시민들에게 영혼의 안식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조직..
이 한심한 조직에서 저에게 요구한 건 오로지 힘을 달라는 거였습니다.힘을!
그 빌어먹을 힘이란 걸 살수만 있다면 땡빚을 내서라도 사주고 싶을만큼 저도 깝깝했습니다.
마지막에 그 말을 했던 거 같습니다.
나는 교향악단을 구경한 적도 없고 오케스트라 같은 건 지나가다라도 본 적이 없다.내가 만약 단 한번만이라도 여러분들의 연주를 듣고 노래를 듣고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거다.
한달에 70만원을 받고 그마저도 짤릴까봐 전전긍긍하면서 그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면 누가 그 음악을 듣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모멸감을 느끼면서 만들어진 음악이 도대체 누구의 영혼을 살 찌울 수 있겠는가.
그 시각이 이미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70만원으론 못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꾸역 꾸역 스물네명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오디션과 교원평가제가 같을 순 없습니다.
오디션이란 제도는 이들이 입단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거라 이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결정되는 폭력이고 그 반면에 교평제는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객관의 탈을 쓴 과정이 그럴듯하게 꾸며지겠지요.
이른바 여론이라는 것에 밀려서 우리가 그 과정을 합의할 수도 있구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진 힘은 바로 그거지요.
피해 당사자를 그 합의의 과정에 이끌어내고 결국은 지들끼리 적이 되게 만드는..
그래서 결국은 아무도 남지 않는..
(조금 생략)
-----신용길,김성태 선생님의 눈부시게 푸르른 시절을 기억하는 김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