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실눈을 뜨고 폰을 열어보니 또 번개가 쳤다. 정확하게 8시10분! 일요일은 거의 시체수준으로 잠만 잔다는 ㅈㄱㅈㅎ샘이 왠일로 금정산 눈꽃구경 가잔다. 이게 왠 떡!ㅇㅇ 산으로 들로 놀러가는 거 좋아하고 성질 급한 나는 얼렁 '몇시? 어디'라고 답문을 찍어넣었다. 그러고는 평소같으면 10시까지의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질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단호함을 발휘, 밥을 먹고 설겆이 하고 (아니다, 이건 올케가.. ㅋㅋ 편하다) 올케랑 청소를 했다. 세탁기 돌려놓고 방을 다 닦고 빨래 걷고 또 새 빨래 널어두고 이것 저것 챙겨넣고 목욕 갈 준비를 했다.
근데 산에 가자는 사람은 왜 아직 연락이 없는거야. 혹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나서 다들 벌써 가버렸나? 아님 나가리됐나? 아님 ㅈㄱㅈㅎ샘이 결국 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건너편 금정산을 바라보니 부산 기상관측 이후 처음 이라는 적설량 40cm의 눈들이 아깝게도 흐물흐물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여러가지 의혹들을 불식하기 위해 다시 확인 문자를 날렸다. '뭐꼬. 벌써 출발한 거가? 취소된 거가? 뭔 말이 있어야지' 했더니 김모샘과 이모샘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1시쯤에 출발하면 좋겠다는 문자를 다시 넣고 깨끗이 씻고 나왔더니 12시. 얼렁 핸드폰 확인했더니 1시에 부산대 지하철 역앞에서 만나잔다. 나의 주특기인 여러가지 일 동시에 해치우기를 해서 겨우겨우 12시 반에 집에서 뛰쳐 나왔다.
아이젠! 맞다, 아이젠 준비해오랬는데... 집 근처 스포츠용품 집이 생각나서 얼렁 그리로 갔다. 뭐라구요? 이만팔천원이요? 비싸다. 몇천원이면 되는 줄 알았더니.. 시간도 없는데 얼렁 카드 긋고 지하철역으로 싸게싸게 걸었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 1번 )샘을 만났다. 역쉬! 노는 데 안빠지는 샘....ㅋㅋ 부산대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화장실을 잠깐 들러야했는데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ㄱㅎ샘. 또한! 노는 데 안 빠지시는 훌륭하신 분...지갑을 두고 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는 ㅈㄱㅈㅎ샘을 1:30에 만나서 부산대 순환버스를 탔다. (4명? 흠.. 예상했던 숫자보다는 적은 수.. 그러나 모두 놀기 좋아하는 훌륭한 사람들... 심지어 봄방학 때 너무 놀아 몸살이 나서 병가를 낸 분( 2번 ) 도 계시다. 우리의 교주로 모시자!!)
제2사범관 앞에서 내려 우리의 가벼운 산행이 시작되었다. 쭉쭉 걸어올라가다가 아이젠 차고 (여기서 이만팔천원짜리 나의 아이젠이 위력을 발휘했다. 캬... 평지를 걷는 듯이 아주 날렵한 나의 발걸음이라니..) 올라가다 눈밭에 냅따 드러눕고.. (눈밭에 누워서 우리의 교주님 하신 말씀.. 눈 위에 누워도 옷은 안 젖네..) 눈싸움... 그리고 눈싸움.. 아이고.. 옷 속에 눈 다들어갔다. 목욕하고 온 귀하신 몸인데.... 눈을 뭉칠 필요도 없었다. 준비가 철저한 ㅈㄱㅈㅎ샘은 스키용 장갑으로 우리를 맹렬공격! 그러나 막판에 교주님과 나의 맹렬한 공격으로 눈에 입에 눈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ㅋㅎㅎ
그 봉우리 이름은 모른다. 아주 높다. 어쨌든 높고 우뚝한 그 봉우리. 앉아서 귤 다 까먹고 내려오려다가 교주님이 사부작 사부작 뭔가를 만들기에 '아 그래 가지고 그것이 눈사람이 되긋나?' 훈수를 두면서 한 명 두 명 달라붙어 같이 만들었다. 학교가는 길의 백미는 쟁반노래방! 눈 내린 날의 백미는 눈사람만들기!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편'을 먹게 되었다. 교주님이랑 나. ㅈㄱㅈㅎ샘이랑 ( 1번 )샘! 그러나 우리는 모두 눈사람도 아무나 만드는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겨울연가>에 나오는 그 눈사람, 또 꽃미남 강**가 선전할 때 나오던 그 눈사람, 그거 분명히 돈 주고 구입했을거다. 그렇게 동그랗게 이쁘게 만들어질 수가 없다. 대충 만들어서 코디를 했다. 역쉬 때깔은 코디가 중요하다. 코디에 뛰어난 나의 솜씨로 ㅈㅎ샘의 썬글라스와 나의 손수건을 이용해서 훌륭한 한 쌍의 눈사람을 만들어냈다. ㅈㅎ,( 1번) 샘의 눈사람은 눈이, 교주님과 나의 눈사람은 입이 없다. 특이한 것은 둘다 머리카락은 있다.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겠지? (어라~ 갑자기 정호승님-아니면 정희성님, 것도 아니면 황동규님-의 '눈사람'이라는 시가 떠오르네. 주제가 주체에 대한 인식, 뭐 그런 거였던 것 같다. 잘난척~)
내려오다가 누구누구( 3번 )는 전문산악인 폼으로 사진도 찍고, 또 누구누구( 4번 )는 나무에 그득 쌓였다가 녹아 불시에 떨어지는 눈 뭉치에 정통으로 맞아 기상관측 후 처음이라는 그 눈을 온몸으로 느끼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운도 좋지~) 오늘 금정산 포장마차(?)는 대목이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그 속을 헤짚고 우리도 오뎅을 먹었다. 500원? 너무 싼거 아니야? 붕어빵 4개 천원? 이것도 너무 싼거 아니야? 대목인데 더 비싸게 받으시지.. 진짜 맛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일사천리. (중간에 솔의 눈?도 밟아보는 행운도 있었다. 솔의 눈은 정말 솔향기 가득했다)
올라갈 때 이미 우리는 다 같이 점을 찍어두었다. 부산대 운동장! 저 흠 하나 없는 순백을 마구 짓밟아 주리라!! 운동장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교주님의 충고도 있었지만 대학은 당연히 지역사회에 각종 문화시설을 제공해야한다는 사회비판적인 생각에 함께 담을 넘었다. (불법 자행은 자신있다!) ( 5번 )샘이 먼저 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줄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한 명, 한 명 넘어들어갔다. 으아~ 넓다. (확인 결과 순백은 아니었다. 벌써 발빠른 사람 몇이 들어와서 거기에 애인 이름을 써놓는 몰지각한 행동을 저질렀다. 귀신은 뭐하나 새벽잠 안자고 저런 짓 하는 인간들 좀 안잡아가고... ) 나는 담을 넘어 들어온 감격에 겨워 탄성을 질렀다. "야아~~ " 경비실(운동장 경비실은 희안한 데 있다. 경비실이 맞는지 어떤지는 잘 몰겠는데 저 높은 곳에서 그 분이 소리를 질렀다. "이 놈들 안 나가나!! 빨리 나가라" 교사는 맘이 약하다. 교주님과 나는 그 높은 분을 보자마자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우리의 ( 6번 )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장 귀퉁이 몇 발자국이라도 밟아보려고 배회하는 용기를 보였다. 겁이 없다. 이 자리를 빌어 변함없는 감탄과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짝짝짝!
쫓겨난 우리는 술이 땡겼다. '길목집'을 겨우겨우 찾아 들어가 동동주 두병에 파전, 국수, 묵한사발 시켜서 이런 저런 얘기하며 푸지게 먹었다. 무슨 얘기 했더라? 당연히 기억이 안난다. "내 나이 되어봐라" 했더니 존경하는 지회장님이 "나이 문 게 자랑이요?" 했더거 말고는..ㅋㅋ아 그리고 ( 7번 )교수, ( 8번 )교수 욕한 거 하고..ㅋㅋ
알딸딸해진 우리는 다 같이 202번을 타고 빙빙 둘러서 각자 집으로 갔다. 참으로 유익한 하루였다. 이런 유익함은 자주 마련되어야한다. 이런 번개도 자주 쳐주어야한다. 그래서 우리 존경하옵는 '번개맨' ㅈㄱㅈㅎ님께서 다음 번개 지령을 내리신 것은 개인적으로 참으로 훌륭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3월 26일! 2005년 들어 처음으로 맛보게 될 토요일 휴무! 이 날, 새로운 번개 지령이 내려질 것이다. 다들 기대하시라~ 그리고 참여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