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에 만났다. 사상시외버스터미널.. 한바퀴 돌아보려니 저쪽에 경희샘이 서있다. 반가운 마음에 "황~, 황 ~"하고 서너번 불렀으나 익숙하지 않은 호명인지 알아듣질 못한다. 코앞에 가서 깜짝 놀래주었다. -사이 학급 문집 자랑-

한 30분쯤 지났나? 의주샘이 보인다. 인사하고 -사이 학급문집 자랑ㅋㅋ- 표를 끊으려고 보니까 순천까지 만천원? 너무 비싼 걸... 샀다가 다시 물렀다. 의주샘 차를 가지고 가는 게 더 싸게 먹히겠다. 발길을 돌려 신모라로! 의주샘의 아반떼를 타고 본격적으로 출발~ 고속도록 집입로를 못찾아 조금 헤맸다.

차도 쫙쫙 잘 빠지고 기분도 가볍고.. 금강, 섬진강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이런 저런 노래를 흥얼거리며 송광사 민박촌에 도착. 저녁밥을 그 집 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오천원을 깎아 이만원짜리 민박에 짐을 풀었다. 방이 뜨끈뜨끈... 7시쯤에 빈대떡에 산사춘 한 병을 곁들여 저녁을 거나하게 먹었다. 산사춘 한 병으로 세사람이 모두 기분좋게 알딸딸하다. 내일 차 시간도 알아보고 간식을 사가지고 가게에서 나왔다. 이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있나. 노래방!! 우리 세대에 딱 맞는 노래를 한 시간 부르고 미진한 맘으로 써비스 10분도 없는 야속한 시골 노래방을 나왔다. (사실 삼천원 깎았다^^;)

TV 보면서 이런 저런 잡담... '봄날' 보면서 고현정 예쁘다는 이야기 (의주샘은 그래도 많이 늙은 티가 난다고.. 그렇긴 하지만 저 나이에 저 정도면 비정상적으로 무진장 예쁘것 아닌가?) 며, 이은주 자살한 이야기며.. 연예가 중계를 좀 하고... 돌아보니 예상대로 의주샘 곯아떨어짐.

이렇게 좋은 곳까지 와서 꼭~ 나의 마지막 이야기는 아이들... 그동안 정리한 아이들에 대한 나의 감정들, 그 결과 학급운영의 방향을 달리 잡아나가야 하는 것 아닌지에 대한 고민들....(이를 테면 이벤트 위주의 즐겁기만 한 학급 운영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아이들 삶을 좀더 정의로운 쪽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면.. 견디기 힘든 이 상황에 그대로 노출 되어 있는 것이 안쓰러워 이것 저것 보상에 연연한 나의 학급 운영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아이들은 자본에, 물질적 욕망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 결핍과 빈곤을 교육해야하는 것 아닌지에 대한 고민 등)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경희샘은 언젠가는 아이들도 알아줄 것이며 열심히 노력한 교사의 모습 자체가 의미 있는 교육이라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아 또 한번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신다. 에궁.. 흔들리는 나..

눈을 뜨니 7:30. 씻고 정리하고 9시쯤 민박을 나와 송광사로 향했다. 이리 저리 둘러보다 함께 대웅전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절'을 했다. 마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를 낮추어 절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불상에 절을 하는 건 단지 '불상에 절'을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를 낮추고, 나를 돌아보고... 그렇게 겸손해지고 뭔가 두려워할 줄 아는 연습인 것 같다. 마음이 가벼웠다. 발은 너무 시려웠지만. 귓꿈치를 들고 살살 대웅전을 나왔다.

10시 30분 선암사로 출발! (아니 보리밥집을 향해 출발했다는 편이 더 정확할까?) 처음엔 순조로웠다. 아이젠도 필요없었고.. 근데... 햇살이 비치지 않는 응달은 여전히 빙판이었다. 설설 기는 수 밖에. 대피소1에서 양갱을 먹었다. 영양갱이 아니라 연양갱.. 겨울에는 초코바보다 '연'한 '양갱'이 좋다는 경희샘 말씀. 맛있는 보리밥을 위해 아침도 굶은 우리들의 탈진을 막아주었다.

헉헉거리며 고개를 넘으니 아~ 이건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공간! 그 사이로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걸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얼굴에 살랑거리는 바람을 슬쩍슬쩍 슬어넘기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하얀~ 오른 쪽 산등성이, 지난 가을께 흩어져내린 낙옆들이 아직 폭식한 왼쪽 산등성이... 그 사이길을 경희샘은 '봄길'이라 했다. 봄으로 가는 길... 랄라~

'그' 보리밥집이 보였다. 얼렁 달려들어가 절절 끓는 그 방에 앉았다. 푸짐한 보리밥을 된장 고추장에 비벼서는 그 많은 밥을 한 그릇씩 다 비워냈다. 숭늉에 붙은 누룽밥까지 딸딸 긁어먹고 의주샘이 타다 준 커피까지 홀짝홀짝... 이 뜨끈한 방에서 한 숨 푹~ 자면 정말 좋겠다. 보약이 따로 없겠다. 그래도 가야지! 밖으로 잠금 장치가 되어있는 독특한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이 화장실은 일을 보고 안에서 똑똑해야 열어준다. 안 열어주면?) 다시 출발! 근데 어라, 보리밥집이 여기 뿐만이 아니네. 두 군데가 더 생겼단다. 한 곳은 이 집 사장님의 형님이 운영한다나?

길은 눈이 애매하게 녹아서 완전히 진창이었다. 찐득찐득~ 끈적끈적~ 고개하나 넘으니 좀 낫다...싶었는데 이내 다시 빙판! 눈사이 드러난 돌부리를 조심조심 밟아가며 내려왔다. 그래도 우리 셋은 두어번씩은 미끄덩했다. 온 주의를 발끝에 두고..경치가 보고 싶어서 짜증이 났다.

선암사가 보인다. 우리나라 웬만한 절은 다 둘러본 것 같은데 이 곳은 처음! 크면서 옹기종기, 아기자기한 절이다. 절집 사이사이에 매화나무들이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붉고 노란 매화꽃들이 꽃눈을 틔워내려고 잔뜩 준비자세다. 노란 매화들은 일주일쯤 뒤면 만개할 것 같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이 매화 터널... 꽃이 피었을 때 보게 된다면 인간으로 태어나 아직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3월 어느날 아무도 모르게! 함께 병가내고 다시 올까요? 했다.

시간이 급하네. 다시 출발... 진빵이랑 만두를 사들고 정류장에 내려와서 차를 기다렸다. 찐빵은 솔직히 동래시장에 파는 것이 더 맛있다. 근데 만두는 정말 맛있다. 하나 더 먹고 싶었지만.. 두사람은 아무 말이 없는 지라.. 890원 시내버스를 탔다. 두 코스 와서 내려서 111번 직행(1350원)를 기다렸다. 경희샘이랑 나랑 길 건너 정류소 의자에 앉아 나훈아의 '고향역' 노래 부르다가 놓칠뻔 했다. 의주샘이 차를 잡아주었기에 망정이지. 버스 제일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자리가 높아서 그런지 정말 재밌다. 버스타기 좋아하고 특히 높은 자리 좋아하는 내게 딱이다. 흘러간 엣노래 따라 흥얼흥얼...

송광사로 다시 돌아와 의주샘 차에 올랐다. 5시 출발. 일요일인데 차가 막히지 않을까?.. 의주샘 피곤할텐데.. 잠들지 말아야지.. 기사 조불라.. 김광석 노래, 이승환 노래 흥얼거리며 부산으로 부산으로... 금강역에서 쉬었다. 배는 그닥 고프지 않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별미인 감자랑 호두과자 먹으며! 배 불러도 이 정도는 먹어줘야 휴게소에 대한 예의다.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참다가 참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앗! 톨게이트. 의외로 차가 잘 빠져서 3시간 만에 구포도착! 화명동 '어머니의 고등어'에서 고등어 구이, 찜이랑 맛있는 밥을 먹고 경희샘 집에 바래다 주려는데 전화가 왔다. 이-홍 부부! 차한잔? 그 늦은 시간에 신혼부부 집을 방문 - 마구마구 문집 자랑- 약속대로 정확하게 10시 반에 그 집을 나와 집으로! 덕천로타리에서 의주샘을 보내고 148번을 타고.. 조불조불.. 집에 도착하니 11시 20분. 곯아떨어졌다.

바람은 벌써 봄이다. 오는 봄에 다시 그 곳에 갈 수 있을까? 매화꽃이 무척 탐나지만 벚꽃도 아쉬운데로 괜찮을 듯. 아이들 소풍날.. 비담임들끼리 선암사행 어떨까 하는 생각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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