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름쯤 전엔가 과학적 성격검사의 한 유형 MBTI검사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ISTJ인가~로 나왔는데 설명중에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말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성격유형이라는 이유였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똥고집이 좀 있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상대방과 합의를 잘 못하는 편이니까!

 아이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학교 규칙 규율은 내가 생각하는 적정한 선에서만 지도? 했다. 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도과정에서 인격을 모독하거나 두발 복장 그 자체가 아이들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나의 지도는 늘~ 다른 선생님들이 보시기엔  지도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다.(게다가 현재 학교의 교칙이라는 것들은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의견은 거의 배제되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담임인 나의 눈에는 아이들의 뽀글뽀글한 머리 , 줄여입은 치마, 악세사리 등이 눈에 잘 띄질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서 더 그럴 것이다. 그 시간에 다른 문제를 상담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소한 것이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지지 않을 때에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맹숭맹숭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율적인 공부습관, 자신을 조절하는 힘' 등을 길러주고 싶어서 공부는 스스로가 하는 것이며 자신의 인생도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교탁을 부여잡고 열띤 논설을 늘어놓곤 했다. 따뜻하고 정답고 정의롭고... 그렇게 함께 즐거운 교실을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나의 바램이었다. 그러나...

인문계... 늘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 가장 힘들긴 하겠지만, 정말 나에겐 이 상황이 쉽질 않다. 모든 것이 입시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 아이들의 생각도 그렇고 샘들의 생각도 그러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두가지 잣대로 평가받는데 가끔은 기본적인 도덕성, 인간성의 부재로, 또 규율에 대한 느슨함으로 아주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지난 번 수능 부정사건도 이런 점에서만 접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상적으로는 등수와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데로, 또 못하면 못하는 데로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교사들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두가지 잣대로 아주 혹독하게 아이들을 비판한다. "요즘 아이들은...." ,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성적과 인성! 두가지는 늘 상충하는 개념은 아니겠지만, 대입이 최대의 지상과제가 된 듯한 대한민국 학교교육-특히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성적향상'을 이유로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인간성'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도록 교육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수능 부정 행위' 같은 사건을 맞닥드리면 무조건 아이들의 도덕성 부재가 모든 문제의 원인인 냥, 비판하고 비난한다.

내 경우는 좀 독특하다. 가치관과 성격상 학급 분위기를 공부하는 쪽으로 '잡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이것이 미안해 해야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늘 마음 한 구석이 묵직했다. 아이들 역시 이율배반적이라서 늘 더 큰 '자유로움'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확실하게 '잡아줄 것' 또한 요구한다.) 물질적인 것들로 너무 많은 보상을 주려한 것 같다. 사실 그때그때 다 이유가 있는 보상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지나친 풍요로움'에 젖어들어 '결핍'을 모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기회를 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지나쳤다. 사탕도, 편지도, 관심도, 애정도.. 믿음도... 다 너무 지나쳤던 것 같다. 또다른 이유로  '성적이나 공부' 때문에 바른 인간성을 배울 기회를 주지 못했던 것같다!

내가 아이들을 믿었고, 또 사랑했다는 사실도 그것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는데...정의롭고 정직한 자아관을 키워가는 그런 아이들로 자랐으면 했는데.. 그러면서 학교에서 함께 즐겁게 숨쉬고 싶었는데...

희망이나 기대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이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 어떤 계기로든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치나 물질로 환산된 것들보다는 그래도 자신의 양심을 지켜내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인간적인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작년 한해, 우리가 함께 살았던 경험, 교탁 앞에서의 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아주 작은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 그런 희망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기소침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종업식을 했다. 문집을 만들고 있어서 별다른 준비없이 막대사탕과 컴퓨터용 싸인펜 40개씩,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을 준비해서 교실로 갔다. 마침 부반장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셨다가 아이들 주라고 '쁘띠첼'을 사오셨길래 이것 저것 나눠 먹으며 '마지막 종례'를 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은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떠들고 즐겁고 딴짓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참고 참고 참고..  한해 두해 겪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많이 비워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런 상황이 힘이 든다.

순식간에 아이들이 사라진 교실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사탕봉지, 과자봉지를 주워담으며 씁쓸하고 우울하고 서운하고 또 시원했다. 물론 아무도 내게 특별한 인사를 건네오는 녀석도 없었다. 1년 내내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그 마음을 알기나 한 걸까? 부끄럽다. 역시 나는 좋은 교사는 되지 못할 성격유형인가? 눈물을 보이지는 않더라도 서로가 아쉬워하고 서운해하면서 헤어지는, 그런 종업식은 지나친 기대일까? (분명 그런 종업식을 한 선생님도 많으실텐데...)

어제 졸업식에서는 졸업생들이 차려입고 온 옷, 헤어스타일 등 겉모습에만 관심있어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 또 다른 절망을 맛봐야했는데.. 자본이 아이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또 이렇다.

아이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선 오히려 더 엄격한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걸까?

"이성으로 절망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그러나 낙관할 의지는 작지만 분명한 불빛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희망의 불빛!  이런 오늘이 쓸쓸하고 울적하고 또 시원하다. (이젠 아이들이랑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도망가는 문제 때문에 다투지 않아도 되니까....마음을 전하려고 혼자 안달하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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