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보다 내 꿈이 더 커지지 않길”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온 선생님이 하루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선배를 찾아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왠지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라고. 그래서 좀 더 큰 꿈을 갖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고. 그러자 그 선배는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보다는 지금 잇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해보라고 조언해줍니다.

그리하여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길을 찾아보라고. 몇 년 뒤, 선배의 조언에 힘입어 그 선생님은 신문지상에도 가끔씩 오르내리는 성공한 초등학교 교사의 한 표본이 되기에 이릅니다. 그때 그 선배는 자신의 충고가 적절했다고 생각하여 흐뭇한 마음에 그 사실을 알리고자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저도 한 사람 독자로서 두 분께 축하의 꽃다발이라도 보내 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도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선생님처럼 아이들도 최고가 되었을까? 최고가 되신 선생님 앞에서 아이들은 더 작아지지나 않았을까? 아이들이 더 작은 존재가 되었다면 그것을 과연 교사로서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괜한 트집(?)을 잡게 된 것은 그 초등학교 선생님의 ‘꿈의 동기’가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에 대한 초라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최고’ 보다는 ‘자기 분야’에 더 비중을 두어 말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왜 끝내 최고여야만 하는지, 왜 최고가 아니면 안 되는지, 그의 맹목적인 최고 숭배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최고의 교사이기는커녕, 오히려 아이들을 다잡이하지도 못하는 무능한 교사에 가깝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제 담을 닮아서인지 최고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최고가 되라는 말을 잘하지 않습니다. 화초에 물을 주듯이 자기 삶을 잘 가꾸어 보라고 말해줄 뿐이지요.

물론 최고가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우니까요.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가 될 수 없는 아이들이 세상에는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하는 것은 곧 꿈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 최고가 되려는 욕심이 커질수록 더불어 사는 가치는 더욱 작아집니다.

제가 근무하는 실업계 학교에서 저는 열여섯 남짓한 나이에 이미 삶에 지쳐 버린 아이들을 만나고, 가난으로 엇나가는 아이들, 가정 불화로 끊임없이 방황하는 아이들과 마주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최고가 될 수 없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현실은 곧 삶에 대한 무기력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열등감으로 이들을 이끕니다. 삶의 가치가 ‘최고’만을 지향할 때, 최고가 될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비극이 탄생합니다.

이제 실업계 학생들마저 대다수가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반갑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학벌주의나 사회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염려스럽거니와, 비교적 입시로부터 자유로웠기에 인간교육 냄새가 남아 있던 실업계 학교마저 입시 학원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학교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머뭇거림의 이유는 지금의 학교가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아이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묻어나는 사람 냄새를 지켜주고 잃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교사로서의 제 몫입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절망과 희망은 안팎이 같은 한 줄의 고리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절망하다가도 희망을 갖고, 희망을 품다가도 다시 절망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그러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절망의 지점으로 기울어지더라도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힘,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보다 제 꿈이 더 커지지 않기를 늘 기도합니다. 최고의 교사가 되기보다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과 함께 위대해지는 사랑의 교사로 오래오래 교단에 남고 싶습니다. 하여 저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퍼 줄 수 있는 것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서툰 사랑으로 아이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제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고, 그들은 끊임없이 제 사랑의 힘을 증명해 줍니다.

사랑이랑 큰 이름에 비한다면 보잘것없지만, 이 책에는 제 얕은 사랑으로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 가는 아이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제 삶을 힘겨워하고, 또 때로는 방황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 안준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우리교육.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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