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이 되는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각날 때마다 맘속에 하나 둘, 쟁여두었는데 막상 이렇게 기회가 생기니까 준비해두었던 '말'들은 하나도 생각 안 나고 머리 속이 텅~ 빈 듯한 느낌이란다. 어색하기도 하고 무의미할 것도 같고 그러네. 그 무의미…함이 가장 완전한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 고민 좀 하다가 그냥 너희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과 이 글을 읽을 즈음에는 이미 3학년이 되어있을 너희들에게 그저 소박한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2004년 3월 2일! 그날은 햇볕이 참 좋았지? 운동장 창가 쪽 교실을 환히 비추고 있었지. 우리 학교는 정 남향이어서 볕이 좋잖아~ 그 며칠 전, 너희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배정표를 받았단다. 조금 설레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하면서 내게로 올 소중한 너희의 이름을 먼저 외워두려고 끙끙댔지만 아직 구체적인 '모습'과 연결되지 않아서인지 쉽지가 않더라. 그 명렬을 들고 또 미리 준비해둔 나의 첫 선물, 사물함 이름표도 챙겨서 처음 만날 너희들을 맞이하기 위해 조금 빨리 교실로 올라갔더랬지. 우선 창문을 열어 투명하고 맑은 3월의 햇살을 교실 가득 들여놓고 삐뚤빼뚤한 책걸상 정리도 하고 또 사물함이 나간 자리에 쌓인 케케묵은 먼지를 쓸어내기도 하면서 기다리려니 머쓱머쓱 너희들이 하나씩 둘씩 다소 쫄아서는 교실로 들어오더군.


들어오는 순서대로 사물함 자리 정해주고 자리에 앉은 너희들을 바라보니 우와~ 그때는 너희들이 어찌나 많게 느껴지던지. '아직은' 그저 이름 없는 한 무더기 안개꽃 같았지. 서로를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이야 너희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향기와 색깔을 지닌 '꽃송이'로 다가오지만. 그렇게 한 송이 한 송이 꽃이 모여 마흔 송이 예쁜 꽃다발! ^^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지. 그땐 솔직히 걱정스러운 마음, 두려운 마음도 많았단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전해들은 '정보'에 의하며 작년 담임샘을 쪼금(!) 힘들게 했다는 명성이 자자한 녀석들이 꽤 있었거든. 그래, 처음엔 그랬었어. 그래도 너희들을 알아가기 위해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또 너희들도 열심히 함께 해주면 그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며 '잘 살아갈 수'있을 거라고 믿었단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들.. 하루하루 한달 한달이 더디고 또 빠르게 지나가더니 너희들이 벌써 3학년이란다. 시간이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는 물리적 사실은 하나의 '사실'일 뿐, 진실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구나. 내게는 늘 가속도가 붙어서 학년 말로 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거든. 12월에는 거의 빛의 속도로 느껴지더라. 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이런 저런 일들로 내가 많이 지쳐있기도 했고 5일밖에 주어지지 않은 2월 전에 뭔가 '정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 것 같기도 해. 사실 내가 너희에게 약속했던 것들 중에서 지켜내지 못한 것들이 꽤 있잖니?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용 쓰다 보니 진짜 시간이 잘 가더라구.


그런데 벌써 너희들이 3학년이 되는구나.


대한민국의 고3, 정말 특별한 대우를 받는 존재들이지. 스스로도 힘들고 힘든 너희들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도 편칠 않고. 지나고 나면 다들 겪어내는 인생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지금은 그저 괴롭고 힘겨운 상황으로 느껴지지? 그래도 그런 속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 두터워지고 자신의 의지도 더 굳세어지고 . 그렇게 그렇게 자라는 것 같아.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가 더 단단하고 더 곧게 자라는 것처럼. 결국은 잘 견뎌낼 너희들이지만 지금은 이런 저런 걱정이 되는구나. 그래서 몇 마디 짧은 말로 너희를 보내려고 해. 이것이 내가 주는 마지막 편지가 되겠지?


가족들이나 선생님들 또 주위 사람들이 너희에게 주는 배려를 감사하게 생각하자. 그렇지만 너희들 쪽에서 그런 배려를 하나의 '특권'처럼 당연한 듯 요구 하지는 말자. 배려라는 것은 배려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와야 의미 있고 따뜻한 것이지 배려 받는 사람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또 요구하게 되면 이미 그 따뜻함은 사라지고 폭력적인 하나의 '특권'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배려는 다른 사람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낳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생각할 수 있는 너희라면 더 믿음직스러울 것 같네.


요즘 샘이 새벽마다 요가원에 나가는데 거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구. "사람의 몸은 무의식  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간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을 잡아 변해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또 그쪽으로 코드를 맞추게 된다"고. 스스로의 마음에 흡족하도록 계획에 맞춰 공부를 했건 그렇지 못했건 간에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고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할 것! 이건 나도 경험해 봤단다. 교사되는 시험 준비할 때, 잠자기 전에 늘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지. 세 번이나 힘든 시험을 보긴 했지만 결국 지금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잖아?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표정부터 다른 것 같아. 노력 없이 또 아무런 대책 없이 낙천적이기만 한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늘 불안해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옭아매는 건 더 나쁠 것 같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조차 너희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것 같아 차마 할 수가 없네. 그치만 여유를 가지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전체를 보지 않고 방향감각 없이 달려가기만 하면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겠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늘 마음 속에 담아두면 좋겠다. 그럴려면 어느 정도의 여유와 여백이 필요할 거야.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이나, 그러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도 결국은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잖아. 과정도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니까.


지난 일 년 너희에게 줄곧 했던 잔소리 중 한 가지는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었지? 혹시 잘못과 실수를 하면 반성은 하되 자신을 지나치게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기로 하자.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善한 사람임을 의심하지도 말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잘못과 실수는 하겠지. 또한 잘못한 후에 자신을 깊이 있게 돌아보는 자세도 중요할거고. 그러나 또 그만큼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 역시 중요한 것 같아. 자신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믿을 수도, 또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있을 거야.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동시에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마음, 너희에게 꼭~ 부탁하고 싶구나.


자주 했던 잔소리 하나 더, 건강! 아주 중요하지. 가장 중요하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법!! 군것질은 가급적 줄이고 잠깐씩이라도 꼭 몸을 움직여 운동해 줄 것. 인스턴트 음식이나 육류를 많이 먹게 되면 몸 안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해서 혈액이 깨끗하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산소 공급이 잘 되지 않아 살은 찌면서 만성적인 졸음에 시달리게 되고 머리 속이 맑지 못하지. 그리고 少食-조금씩 먹는 것이 좋아. 한 번에 폭식하는 것 보다는 간식을 조금씩 자주 먹어주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은 상식이지? 그리고 운동! 특별한 운동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면 교정이라도 걷는 것이 좋겠다. 수업시간에 졸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집에서 푹 자는 것이 좋을 거고.


아~ 너희가 벌써 3학년이라니….

 

2학년이 금방 흘러간 것처럼 올 한해도 그럴 거야. 너희 모두에게 의미 있는 1년, 후회 적은 1년이 되길 빌게. 그리고 지난 1년, 우리 모두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2005년 1월 어느 따뜻한 날에, 마지막으로 너희들 담임이.


* 빼먹은 것 하나 더! 이젠 담임 아니라고 또 수업 안 들어간다고 인사도 없이, 한마디 말도 없이 빳빳하게 스쳐 지나가면 나 화낸다. 화나면 나, 무서운 사람이야!! --+ "쌩끗~ 샘, 안녕하세요?" 알지? 손까지 흔들어주면 더 좋고.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콩 2005-01-2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11월 교지에 글을 부탁받았다. 교지 일을 자주 해보았기 때문에 ŠE료교사로부터 글을 부탁하고 받아내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알기에 기분좋게 글을 써주리라 했는데, 진심으로 그랬는데 너무 늦고 또 너무 공허한 말만 늘어놓게 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나의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이다. 미운 건지 이쁜 건지, 아이들 문제인지, 내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이들도 나도 어쩔 수 업는 시스템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작년 한 해가 너무 힘들었다. 내가 왜 힘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 힘이 들었다. 혼자 용 쓰다가 나가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들은 내게 마음을 주진 않는 것 같다. 여전히... 남은 몇일 동안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