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지에 글을 내기로 해놓고 12월은 귀차니즘에 푹 쩔어서, 방학을 하고 난 1월은 허리 다치는 바람에, 또 중국어 부전공 연수 때문에 나름대로 바빠서 지금까지 미뤄왔다. 내일이 데드라인이다. 더 이상 미루면 눈총맞아 죽을 것 같다.  별 고민 없이 급하게 쓰려니 맘만 바쁘고.. 지난 번 부치지 못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봐서 내야겠다. 사실 아이들에게 할 말-내 편지의 특징은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그러곤 주저리주저리 길기도 하다-이 너무 많지만 1년 내내 나의 심각함에 아이들도, 또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너무 무거웠을 것이다.  나 혼자서 너무 무겁게 살았다는 점이 반성이 된다. 내가 무거우면 아이들 또한 무거웠을 것을...  올 1년은 경쾌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살아가리라. 공자님 말씀처럼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또는 반드시 어떠하지는 말아야한다'는 경직된 원칙보다는 사람을 먼저보는 융통성을 먼저 생각해야겠다. 경쾌하게 진지하게, 진지하게 그러나 경쾌하게!!

 

한명 한명 예쁜 얼굴, 하나 하나 고운 이름.

네 이놈들 구반.

햇빛 따뜻하게 비치는 그 교실에 너희들 보다 먼저 가서 책걸상도 정리하고 사물함 나간 빈자리 먼지 쓸어내며 조금은 설레이며 또 조금은 두려워하며 기다렸던 너희들.... 처음엔 마흔 명의, 적지 않은 파악 대상으로 느껴졌지만 결국 지금은 이렇듯 한명 한명 살아있는 '존재'들로 내게 남게 되었구나.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만나고 노력해서 맺게 되는 아름다운 결실이구나. 

너희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눈 맞추며 이야기하고 마음 나누고..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한 1년을 보내고 싶었는데 처음의 거창했던 그 계획들 다 어딜가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미루다보니 결국 2학년의 끝자락을 밟게 되었네. 있을 때 잘 해야한다는 건 정말 만고의 진리인가 보다.

후회는 없단다. 너희는 어떤지? 까탈스럽고 잔소리도 많고 가끔 오바하고 또 가끔 이해하기 힘들었을 담임 만나 너희들도 고생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구나. 결국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나에게 맞추라 요구하지 않기로 했지? 내가 이 약속을 제대로 지켰나 반성이 된다. 너희는 어때? 

생각해보면 내가 바란 건 한 가지였단다. - 하루 하루 함께 즐겁고 함께 행복한 학교 생활- 지금 돌아보면 그건 또 얼마나 무모한 포부였는지... 지난 1년, 즐겁고 행복하고 또 보람 있었니?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편지,  너희들 예쁜 얼굴 하나하나 떠올리며 한 명 한 명 고운 이름 불러주고 싶네. 자~ 들어봐~

 

우리반 첫번  강지!! 자기 주장 강하고 이성적인 ET형의 대명사! 강렬한 눈빛, 따뜻한 마음.. 사막에 떨구어 내도 살아나올 것 같은 생활력의 소유자. 올 한해 나름대로 열심히 보냈지? 내년에도 올해처럼만!  건강하고 새해 복 만땅 받거라.

 

수줍은 소녀 써니!! 발그스레한 얼굴. 똥그란 두눈. 있는 듯 없는 듯 조용조용.. 착하고 성실하고  그러나 알고 보면 은근히 자기 주장도 강하고 고집!! 사실 사람이 고집도 좀 있어야지.. 샘은 이해함!! 그러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지? 내년에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보내렴.

 

오동통 귀여운 뽀!! 축제 때 무지 이뻤지. 기말고사 성적이 많이 올라 안심! (니 말대로 그동안 얼마나 떨어졌으면..그래도 기말때 공부하니까 올랐겠지^^?)  3학년이 되면 더 열심히 할거지? 공부도 음악도!! 근데 뽀 도대체 니 남자친구는 누구냐? 남친소 언제?

 

주근깨 소녀 우리형~ 주근깨 이야기했다고 싫어할라~ 너무 귀여운데.. ^^ 조용조용 조심조심... 그러나 알고보면? 음악하고 공부하고 힘들었지? 너무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음, 형~ 힘들면 힘들다고 말도하고(엄마만 괴롭히지 말고!!)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여유 가지고 알지?

 

은근한 노력파 유진!! 유진이 노력하는 건 샘이 알지. 그래서 이번 성적 좀 떨어져도 샘 별로 걱정 안함. 지난 번 그 책(!) 다 읽었는지 어땠는지 궁금하다. 말이 없어놔서리.. 내년에도 올해처럼 열심히 할거라고 믿어! 근데 건강도 중요하겠지? 아프지말고.. 파마는 졸업후에!!

 

김해댁 우리 깨비!! 사실 우리 깨비네 집이 완전 촌은 아닌데 어쩌다가 촌* 소리를 듣게 된거지? 노력파!!  그 노력 때문에 2학년에서 몇명 못받는 장학금까지 받았지? 건강도 신경쓰면서 공부하거라. 그리고 덧붙임- 깨비 덧니 최강!!

 

개미허리 우리 개미!! '개미'생각하면 젤 먼저 생각나는 건? 치과!! "오늘만 보내줘요~ 이 말이랑.. " 이젠 이빨교정기도 풀었으니까 보충 뺄 일 없겠지? 하긴 그래도 워낙에 약골이라... 병원 열심히 다녀서 3학년이 되면 더욱 열공하는 의젓한 일개미 되길..

 

탈랜뚜스타 연지!! 배처럼 싸근싸근한 우리 연지.. 니가 원하는 일 열심히 하고 있지? 방학동안 수진이랑 더 열심히 해서 너희 둘이 원하는 일 꼭 이뤄내길... 나중에 성공하면 '나' 잊지마! 헤어, 네일, 얼굴맛사지.. 1년 내내 웃는 얼굴 보여줘서 고마워. 성낸 얼굴 한번도 본적이 없는 듯.

 

하늘만큼 예쁜 하늘!! 특이 눈이 맑고 이쁘지. ^^ 진짠데... 너도 그렇게 생각? ㅋㅋ 울 하늘 올1년동안 많이 놀았지? 내년에는 조금 덜 놀고 열공!! 알지? 엄마가 아빠가 하늘 생각하는 것 만큼 하늘이도 예쁘고 맑고 밝게 자라길.. 지금처럼!!

 

법 없이도 살 후남!! 그림은 잘 되어 가는지.. 접때 고민하면서 울던거 생각나서 걱정.. 그림이랑 공부랑 같이 해내기 진짜 힘들지?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신에게 좀 더 여유로워지기를... 건강 챙겨가며 공부하고!! 굶거나 컵라면 절대 금물!! 법 없이는 살아도 밥 없이는 못사는 법!!

 

또한 법 없이도 살 우리 남고!! 샘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우리 남고 혼자서도 참 잘했어요!! 1년동안 남고에게 샘이 별로 해준것이 없는 것 같아 미안한 맘만 가득!! 미안해~ 게다가 문집 만드는 일까지 부탁!! 만들고 나면 잘했다는 생각들텐데 시간이 너무 없네. 우리 우짜지?

 

왕 하얀 피부.. 미현!! 미현이 떠올리니 걱정이 앞선다. 왜? 자주 아파서.. 방학 동안 병원 열심히 다녀서 내년에는 안 아파야지? 스트레스 받으면 더 아프데이~ 하긴 우리 미현이는 낙천적인 아이니까!!  그림 그리는 일은 여전히 행복하지? ^^

 

귀염둥이 은헹헹!! 귀염둥이 효녀 우리 은헹~ 은근히 열심히 하는 모습!! 믿음이 팍팍 간다. 방학 동안도 엄마일 도우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지? 약속했으니까 샘이 믿으께.. 아프지 말고, 밥도 잘먹고.. 헤어질 때가 다 되어가서 그런지 왜 이리 걱정이..

 

든든한 눔!! 우리 지얌!! 하고 싶은 이야기 얼굴 보면서 다 했는데... 지얌이는 스스로 잘 알아서 하니까 뭐 샘이 더 할 말은 없고 1년동안 이것 저것 고맙고 예쁘다. 특히 니 마음 보여준 것!! 그게 샘한텐 젤 큰 선물! (우리 사귀는 사이?) 내년에도 올해처럼!! 성공할껴!

 

긴 손가락 우리 삐차!! 은근히 터프한 녀석! 그러면서 맘은 보기보다 어찌나 여린지.. (비차 착한 거 샘이 다 알아봤다) 고집은 말도 못하지만.. 방학동안... 사실 걱정이 좀 된다. 말한 것 실천해야 니가 하는 말에 힘이 실린다는 사실!! 그리고 이번 방학은 마지막 기회. 알지?

 

엽기녀 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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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1-24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취소다. 교지에 실을 다른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