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모의고사를 치겠단다. 모의고사를 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반도 모의고사 안치냐고 계속 몇몇 아이들이 내게 물어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사설 모의고사는 분명 '현실적'으로 불법이고 그렇다면 누구의 권리가 먼저 배려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원해서 7,000원 내고 그 시험 치겠다는 아이들의 권리인가 아니면 그 하루가 정말 힘들고 무의미해서 못치겠다는 아이들의 권리인가.


치려는 아이들의 요구를 묵살하지는 않겠다. 그냥 치면 된다. 내가 원하는 건 안치려는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우리반은 14명의 아이들이 못치겠다고 한다. 교육청 모의고사 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그 시간에 계속 앉아있을 수 밖에 없단다. 계속 자거나..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돈까지 내고 그 짓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방관할 수는 없다.


그날 하루 일과가 어떻게 운영될지는 모르겠다고 얘기해두고 일단 부모님과 의논해서 나와 통화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부모님이 분명히 안 치는 것으로 알고 계셔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사실 그날은 수업을 해야한다.  이 아이들의 학습권이, 그리고 나의 수업권이 명백하게 침해받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내 생각이 자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부모님의 자꾸 나의 의견을 물으시니까.. 사실 가장 존중받아야 하는 건 아이들의 입장과 판단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의 사고력을 단지 '어리다'는 우리들만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리적인 나이의 많고 적음이 그 판단력과 사고력에 그대로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무실... 주위의 시선이 스스로 계속 의식되기도 하고...



그래도 끝까지 우리 아이들의 '안 칠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


나의 수업권과 아이들의 학습권 침해에 대해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누구에게 양해를 구해야하는지 명백하게 하고 싶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도 인권침해라고 계속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 그래야 끝까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늘 말하는 모의 고사의 학습효과.. (솔직히 나는 그 효과에 대해 부정적이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거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한 거 아닐까?



이런 내 생각이 잘못일까? '현실'을 무시하고 너무 고집을 피우는 것일까? 마음이 계속 무겁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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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2-0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학년 말에는 종일 치르는 모의고사를 치러낼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대학수학능력 중의 하나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한 반에 절반 이상은 그런 시험을 치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지요. 2월까지는 나태하던 아이들이 3월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살아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한 현상으로 생각됩니다. 시험 안 칠 권리. 일반계 고교에서 말하기 어렵긴 하지만, 2학년까지는 안 칠 권리를 지켜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이건 명확히 해 두심이 좋을 듯 하네요. 3월부텀은 너희들도 분명히 열심히 치고 있어야 함이 명백한 사실임을... 마음을 힘들게 하지 마세요. 마음이 힘들면, 몸도 힘들답니다. ^^ 힘내세요, 해콩선생님!!!

심상이최고야 2004-12-0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님이 옳다고 생각한 방향대로 행동하는 용기가 한편으로는 부럽고 얼마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 생각하니 '끝까지 추진하세요!!' 그런 말 선뜻 하기 어렵네요. 이런 고민 안 할 날은 언제쯤 찾아올까요!!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모의고사를 치지 않겠다는 학생의 권리' 당연히 배려되어야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며.... 해콩님! 힘을 내시와요^^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