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 월요일 야자 감독하면서 틈틈히 너희들에게 줄 편지를 썼거든. 근데 너무 겉도는 이야기로 공간 메우기에 연연해한 것 같아서 말이야, 이 밤에 다시 컴 앞에 앉았단다. 무슨 말을 할까? 결국엔 편지 내용이 비슷해지는건 아닐까? ^^; ㅋㅋ


마지막 시험이로구나. 장난 삼아 너희들을 "어이 3학년~" 이렇게 부르는 내가 얄밉고 가끔 원망스럽지? 공부하라는 말도 요즘은 잦아진 것 같다. 공부를 해도, 또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그 스트레스가 어떠할지 아는 나로서는 너희들이 너무 안쓰럽고 이런 교육체제가 또한 안타깝다.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가 잡아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 잘 알기에 너희들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땅에 사는 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 또한 교사로서 죄짓는 마음...  이 다음에 너희가 자라면 알 수 있을까?


나는 너희가 소박한 꿈을 소중히 키울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단다. 오늘 수업시간에 말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그런 존재이고 그렇기에 우리 앞에는 크게 두 가지 삶의 방식이 놓여있는 것같다고... 한 가지는 '언젠가 죽을 목숨, 욕망이나 가득 채우면 살자!' 또 한가지는 '언젠가 죽을 목숨, 다른 사람을 위해 가치있게 살자!' 너무 단순하게 일반화했나? (내가 워낙 단순하잖니?..)솔직히 나는 너희가 '위대한 삶'을 꿈꾸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니, 작고 소박하지만 가치있는, 그런 '위대한 삶'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붕어빵 장사를 해도 붕어빵을 먹는 인간의 행복?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씀을 가진 그런 위대한 삶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검소하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줄 아는 그런 위대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면 너희 모두가 학교 공부를 다 '잘'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지만 '열심히 하는 성실함'과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자긍심과 자신감 역시 아주 소중한 가치란다. 무엇엔가 몰두하고 최선을 다하는 너희들의 모습은 분명 핑계대고 게으름 부리고 투덜거리는 너희들 모습에 비해 스스로도 만족스러울거니까. 걱정스러운 건 최선을 다했음에도 성적이 제대로 안 나올 경우, 너희들이 스스로에게 줄 상처, 그것이 가장 걱정이란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이미 너희는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자신을 못미더워하고 미워하지 말길...


고등학교때 나는 그랬단다. 머리 나쁜 나 자신을 미워하고 머리 좋은 친구를 질투하고.. 그런 감정들 때문에 친구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아. 너희는 나처럼 그렇게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도 사랑하고 친구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런 고등학교 생활이었으면 좋겠다.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이니만큼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거라. 그렇지만 공부량에 비해 성적이 못나왔다고 자신을 미워하지는 말거라. 그리고 앞서 실망하지 말거라. 늘 소박하게 자신을 사랑하거라.. 기도할께.


                                                                                                                            2004. 12월 첫날 한밤중에.. 샘이.


* 가끔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샘이 끝까지 너희들 사랑하는 것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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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엊그제 야자감독 하며 쓴 편지...




  신나고 즐거웠던 축제도 끝나고 이제 남은 건 기말고사… 그리고 조금 있으면 설레는 크리스마스와 함께 연말이 오겠지? 너희들은 보충수업으로, 나는 중국어 부전공 연수로 방학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어느새 2월… 그리고 봄방학…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렇게 손가락 꼽아가면서 글을 쓰려니 벌써 너희가 3학년이 된 것 같아 맘이 조급해지고 아쉽다. 너희들의 스트레스 수치도 알게 모르게 점점 올라가겠지?  



  고 3 때 내 모습을 돌아보면 공부는 안 해도 늘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야했는데, 그래서 그런 생활이 너무 싫었는데 이제 조금 있으면 너희가 그런 고 3이 된다는 것이 너무 안쓰럽다. 하지만 나무에 하나씩 늘어가는 나이테도 춥고 힘든 겨울을 이겨낸 흔적이듯이 너희도 때론 좌절하고 때론 절망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힘든 일들 하나하나 스스로 겪어 나가면서 자라겠지?



  2학년 마지막 시험, 기말고사로구나. 말 안 해도 너희들 스스로 이것이 내신 성적 올리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테고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들 할 테니 담임으로서 따로 할 말이 없네. 그저 밥 잘 챙겨먹고, 잠도 푹~ 잘 자고 깨어있는 순간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공부방법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말 외에는 말이야.



  공부 방법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기말고사 기간이라 어떤 선생님은 자습을 주실 거고 또 어떤 시간엔 시험범위를 정리해주시는 샘도 계시지? 1학기 때부터 샘이 계속 하는 말이지만 그때 그때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수업내용에 팍~ 집중하는 것이지.



  우리에게 정말 공평하게 주어진 것 중의 하나가 ‘시간’인 것 같아. 그저 딩굴딩굴 보내도 시간은 흐르고 또 뭔가에 열중해도 시간은 흐르지. 딱히 공부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내 경험으로는 딩굴딩굴 보낸 시간은 나중에 꼭 후회하게 되더라!! 인간이 후회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겠지만 후회할 일을 조금 덜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아. 내년에 너희들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후회하기를 바란다.



  마지막 시험, 우리 모두 힘내서 열심히 공부하자.



2004. 12. 2. 2학년 9반 담임


 


* 솔직히 가끔 투덜거리긴 하지만 "내 안에 느그 있다는 사실,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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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2-0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보니.. 먼저 쓴 편지가 더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엊저녁 쓴 편지는 너무 감상적? 공부를 하라는 말인지, 하지말라는 말인지 아이들이 헷갈릴 것도 같고..솔직히 어렵다. 밑에 편지로 복사해서 주었다. 아이들이 내 편지보다는 시험시간표를 먼저 읽길래 "아~ 진짜.. 샘 편지를 먼저 읽어줘야징~" 했다. 아이들은 '샘 안에 느그? 우리, 있단다' 하며 비웃었다. 연지는 "어~~ 뭐예요, 샘! 저는 빼주세요.^^" 하길래.. "그래? 그럼 교실에서 나가! --;" 하고 웃으며 "열심히 공부하세요~" 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