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 최영철

 

세상에 나서 수세식변소만 사용해 본 딸아이는 모를 것이다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맍다는 것을

불면의 밤은 길기도 길어

새벽도 오기 전에 앞다투어 산비탈 공중변소 앞에 줄을 서서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세상에 나서 문화적으로만 놀아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누가 쏟아놓은 것인지도 모르는 똥덩어리 위에

또다시 자신의 똥을 내려놓으며

아직도 하나가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지독한 똥 위에

더 질기고 지독한 자신의 똥을 쏟아놓을 때

그 쾌감은 난삽한 섹스와도 같이 온몸을 전율시킨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똥장군이 출렁거리며 오르내리는

햇볕 잘 드는 동네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어

벌어진 널빤지 사이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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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1-24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세식 변소'만' 사용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시를 읽으면서 수세식 변소만을 고집하는 일이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임을 알았다. 자신의 것도 더러워하며 못본척 얼른 물로 씻어내리는 문화인들이 정갈할가? 다른 사람의 그것 위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으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그것들을 무던하게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정갈할까? 아울러 여전히 이 사회에는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쏘아봄'이 언젠가는 작지않은 연대의 '힘'으로 분출될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