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종이 울리고 감독관들이 한 뭉치씩 시험지를 안고 교실로 들어갔다. 수능 정감독 연속 6년째.. 요상하게도 올해는 1교시 감독이 없다. 두시간 반을 교무실에서 쉬어야 한다. 지금쯤 각 시험장에서 눈을 감고 시험지를 기다리고 있을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다. 마음이 싸~해지는 것이 감독인 나도 이렇게 가슴이 죄어오고 온 몸의 세포들이 살아나는 느낌인데 지금쯤 아이들은 얼마나 떨릴까... 저린다.
(제 1교시 언어영역 예비령이 울렸다. 답안지를 배부하라는 방송이 들린다)
'우리' 아이들.. 어제 언니가 '모든 아이들'이 시험을 잘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말했다. 그럴려면, 모든 아이들이 시험을 잘쳐서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려면 시험문제가 쉬워지는 수 밖에 없다고..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말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시험문제가 쉬운지 어려운지 구분도 못한다고.. 점수도 늘 엉망이라고.. 어렵게 나와야 상위 몇 프로의 아이들을 변별하기 쉽고 나아가 그 아이들이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대한민국 1%가 된다고.. 그래서 나머지 아이들을 먹여살릴 '국가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이런 의견들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우리 언니는 아주 소박한 사람이다. 귀여운 내 조카 두 녀석에게 엄마로서 언니는 공부는 좀 못해도 건강하고 녀석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 언니가 '모든 아이들'이 시험을 잘 치기를 바란단다. 그런데 교사라는 우리는 '우리' 아이들만이, '내' 아이만이 남의 아이에 비해 좀더 시험을 잘 치기를 바란다. 어느 것이 참된 마음인지.. 참된 교육인지.. 부끄럽다.
언니의 바램이 이루어지도록 올해는 시험 문제가 쉬웠으면 좋겠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렇게 수월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자기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의 시험으로 아이들의 인생이 결판나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고 기회를 주는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다.
(1교시 언어영역 준비령이 울렸다. 문제지를 배부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 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모두 시험을 잘 치기를 바란다.
(언어영역 듣기 문제가 들려온다.. )
지금껏 그래왔듯이 '현실'이 우리들의 눈을 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 빨리 와서 공부 못하는 '우리' 아이들도 인간으로서 존중 받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소중한 사람임을 가슴 가득 품고 교문을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샘~' 하고 불러주길 바란다. 1년동안 공부하느라, 그리고 오늘 저 힘든 시험을 치르느라 초췌해진 아이들의 얼굴에 온통 꽃이 만발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