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12. 금요일

늦잠 잤다. 눈을 뜨니 7시 5분.. 과일 몇 조각 주워먹고 대충 씻고 허겁지겁 집을 나와 헉헉 달려서 버스를 타고 다시 걸어서 교무실.. 8시 20분.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하다. 회의는 40분부터니까 아직 20분이나 여유가 있다.

늘 어지러운 내 책상... 내 머리 속같다. 야자자유권 세장이 놓여있다. 도*양, 지$양, 수@양.. 세명.. 어제 나한테 말도 안하고 전화도 없이 그냥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야자를 빠진 것이다. 특히 도*양은 어제도 그제도 빠졌다. 아프다고.. 사실 몸 아플 때 야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양은 좀 심하다. 지각, 결석, 병원... '이번이 마지막이지? 아픈 건 샘도 이해하는데 도*아, 니가 아픈거 핑계로 자꾸 그럴까봐 걱정이다. 담번에 조금 아픈 건 꾹 참아보자..'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이젠 의미가 없다. 녀석은 늘 아프다고 보충수업을, 또 야자를 빠지겠다고 나를 찾고 어제처럼 내가 없는 날이면 한 달에 한 번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 쓰라고 만들어준 야자상품권마저 써먹고 간다. (사실 아픈 거 포함해서 한달에 한 번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아이들... 도데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아이들은 대하는 건지 모르겠다. 늘 순환되는 일상..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제 몇시간 걸려 만든 축제 '가정통신문' 결재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례를 가야하는데 깜님은 '가정통신문' 내용의  토씨까지 읽고 있다. 오타발견! '고쳐서 인쇄하겠습니다~', '코스튬플레이가 뭐요? 프라모델은 또 뭐요?'  '네 이건 이런 것이고, 저건 저런 것입니다.' .... 기다리다 못한 내가 '깜님, 저 조례 가야하는데요' '갔다 오이소'

내 자리로 돌아와서 교무수첩을 챙기는데 학생부장이 부른다. 지난 일요일 생일 잔치한다고 덕천로타리 모 소주방에서 친구 다섯이서 거의 육만원 가까이 술을 퍼마신 우리반  *름이... 월요일 학교와서 속이 너무 아파 술약(!)을 사먹다가 학생부장샘께 걸렸다. 그것도 다른 반 남자친구가 *름이를 위해 몰래 외출해서 사다준 약이라나.. 나보다 낫군. 어제 녀석의 언니가 다녀갔다. 어머니의 도장을 들고 와서 각서를 쓰고 갔다. '차후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사회봉사, 전학 등 학교에서 주는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습니다.' 이렇게... 그 각서를 달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아름이를 학생부로 보내달란다.

교실.. 조례... 어수선.. 내가 들어와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니고 떠들고... 앉아라~ 조용히 해라~ 고함쳐도 녀석들 앉히는데만 5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아침마다 이렇다. 차라리 일제식 '차렷, 경례'가 필요한 거 아닐까? 수업시간표 바뀐 것 적어주고.. 아직 등교하지 않은 도*양, 울반 반장.. 출석부에 체크하고.. 야자자유권에 대해 한잔소리... '최소한 점심시간까지 내려와서 샘한테 이야기해라. 그리고 하루에 이거 사용할 수 있는 숫자는 선착순 두 명이었잖아... 어쩌구 저쩌구...수업 열심히 하고!'  나오면서.. '아침마다 아이들을 저절로 주목시킬 기발한 방법 없을까? 조례 시간에 전달말고 뭔가 재미난 이야기 해줄 것 없을까?' 생각했다.

다시 교무실... 다행히 1교시 수업이 없다. 다시 깜님 앞! 결재판. (조례시간 운영에 대한 고민은 벌써 저만큼 날아나버렸다.) 깜님 말씀하시길..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나가는 문서인데 오타는 고쳐야지.. 근데 오타난 거 고쳐서 다시 결재받으면 안될까?'  '깜님.. 제가 꼭 오타 고쳐서 인쇄하겟습니다. 부장샘, 지금 수업가셨고 저도 2교시 수업해야하고...깜님을 자리에 잘 안계시고...바쁘고...' 마지못해 결재해주며 중얼거리길  '점심시간까지 받으면 되지..' 결재해주는 마음 변할까 결재판을 얼렁 챙겨넣으며 돌아보고는 '감사합니다' 못을 박는다.. 속으로는 '교사가 뭐 맨날 노는 줄 아나! 고쳐서 인쇄하겠다는데...궁시렁..' 깜빡할세라 오타난 거 얼렁 고쳐서 다시 출력해서 인쇄요구서 써두고 다시 교장실로.. 아! 나보다 먼저 와서 결재를 받는 사람이 있다. 행정실서 기다리란다. 10분정도 기다린 것 같은데 감감무소식.. 수업준비 해야되는데... 다시 교무실로 올라왔다.

학교에 와서 두시간도 채 안 되 나를 지나간 일들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 거의 매일 이렇다.

아이들에게 조금 다른 시선을 던지고 싶고 녀석들도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근데 내가 매일 하는 말이란 고작..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그리고 늘 우리반만 더 힘든 일이 많은 것 같아 억울해하고.. 아이들은 내 마음을 여전히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하다. 우리반만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가 더 많은 것 같고 (사실.. 각종 공납금을 못내는 녀석은 여학생 반 중에 우리 반이 젤 많다. 적으면 두명 많으면 다섯명... 늘 행정실에서는 나를 찾는다) 아픈 아이도 더 많고, 결석도 많고, 사고도 많고... 늘 꼴찌다.. 우리 반은 그.렇.다. 그렇다고 다른 반에 비해 담임이랑 사이가 더 좋거나 살갑거나 하지도 않다. 내가 보내는 멜에 답장을 해주는 아이도 거의 없고 야자자유권도 책상에 틱 던져두고 가버린다. 담임이 '나'라서 그런걸까? 1년 동안 비교적 자유롭게 반을 운영했던 결과일까? 아니면 원래 아이들이 처음부터 좀 그런걸까?  내가 기대치가 너무 큰 걸까?  늘? 아이들이 나랑 맞지 않은 걸까?

美的 距離... 근데 사실 아이들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필요를 느낄 만큼 아이들을 잘 알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화요일 모의고사 치르는 반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이 아이들의 무엇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가..

내일도 이런 하루의 연속일까? 내가 바라는 건 일상의 잔잔한 기쁨.. 행복... 그런건데 아이들은 기쁨, 행복 느끼고 있을까? 1년 동안 우리 반에서 느꼈을까? 나는 이제 더 뭘 해야하는걸까? 학년초엔 그 무엇도 하지 않겠다고, 억지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지금 나는 여전히 이러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상이최고야 2004-11-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힘내세요!!

해콩 2004-11-1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6년차 신규.. 정말 제 마음과 행동은 신규 때랑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부끄답니다. 투덜거리고 쫑알거리고 토라지고... 혼자서 이러고 있는 제 모습... 변덕이 죽 끓 듯하죠. 그래도 가끔 마음이 안 잡히고 힘에 부칠 때는 글을 쓰며 욕(!)도하고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되어요. 샘의 응원도요. 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