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길이란 무엇이던가?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가시덤불을 개척함이 아니던가. 길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다. <生命之路>, <<熱風>>, 1:368, 1919.
둘 세상에 분투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방황>, <<傷逝>>, 2:121, 1925
셋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故鄕>, <<납함>>, 1:485, 1921
*납함(口內喊) :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때, 군사가 일제히 고함지름.
넷 인생이라는 기나긴 길을 갈때 가장 쉽게 직면하는 것은 두 가지 난관이다. 그 하나는 기로에 섰을 때이다. 묵자는 통곡을 하고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울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다. 먼저 갈림길 머리에 앉아 조금 쉬거나 한숨 잔다. 그런 뒤 갈 수 있어 보이는 길을 택해 간다. 만일 진실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의 먹을 것을 빼앗아 배고픔을 면할 것이다. 하지만 길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만나면 나무에 올라가 호랑이의 허기가 사라지고 지나간 뒤에 내려올 것이다. 가지 않으면 나는 나무 위에서 굶어죽을 것이다. 그리고 끈으로 내 몸을 나무에 묶에 시체조차도 호랑이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무가 없으면 방법이 없다. 잡아먹으라고 하는 수밖에. 하지만 호랑이를 한 번 물어도 괜찮을 것이다. 다름은 막다른 길이다. 완적선생도 크게 울고 돌아섰다고 한다. 하지만 난 기로에 섰을 때처럼 계속 나아갈 것이다. 가시덤불 속을 한동안 걸을 것이다. 온통 가시밭이고 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그런 곳을 만난 적이 없다. 세상에 본디 막다른 길이란 본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아 만나지 못했거나. <兩地書250312>, <<兩地書>>, 11:15, 1925
루쉰 [희망은 길이다-루쉰 아포리즘], 이욱연 편역, 이철수 판화 2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