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어려움


젊은 날에는 말이 많았다. 말과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구별되지 않았고 말과 삶을 분간하지 못했다.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하기의 위태로움과 말하기의 허망함을 알지 못했다.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언어의 외형적 질서에 하자가 없으면 다 말인 줄 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말하기의 조건들을 일러주는 스승이나 선배도 없었고 가르쳐주었다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말과 글을 배우는 젊은이에게 말이란 너무나도 유혹적인 것이어서 말하기의 두려움을 함께 배울 여유는 전혀 없었다.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는 모두 끌어다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한 단어가 사전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끼워 넣고 마을 조립하는 것은 정당한 논리의 적용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의 근거를 돌아보지 않았다.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


- 김훈, 『김훈세설-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생각의 나무, 2002. 5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