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렸대. 자폐증이래. 그 정신병은 치료약도 없대. 죽을 때까지 바보 멍충이로 살아야 한다니....." 엄마가 훌쩍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엄마의 말을 꺾었다. "오늘의 세상은 자기만이 완전한 인간이라고 믿기 때문에 개인주의가 팽배해. 그래서 각종 범죄와 탈법이 횡행하는 거야. 이 세상을 순치하는 방법은,  내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어야 해. 내가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협동이 이루어져. 그게 바로 바람직한 공동체 사회야. 선량하기 때문에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바람직한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져. 모든 일에 자기가 최고하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야말로 골치 아픈 욕망의 덩어리지. 다가오는 세기야말로 인간의 교만이 겸손으로 순치되어야 해. 자연에 귀기울여야 하고 인간이 순박한 심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돼."

읍내 큰 병원에서 테스트를 받고 온 날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마셨다. 너무 취해 혼잣말로 계속 소리쳤다. 엄마는 울기만 했다. "괜찮아, 시우는 여기서 살면 돼. 아비야, 걱정 마. 시우는 여기서 농사짓고 살테니깐. 잘난 체하는 사람, 똑똑하다고 으스대는 사람 안보고 우리끼리 살면 되잖아."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김원일 [아우라지로 가는 길] 1.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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