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근래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양심의 자유는 주로 현재는 폐지된 '사회안전법'에 따른 '전향' 및 '보안감호처분' 제도, 그리고 그 후신인 '준법서약서' 제도 및 '보안관찰법'에 따른 '보안관찰' 제도 등과 관련하여 논의되어 왔다. 그리하여 양심의 자유는 체제에 도전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하였다.그런데 최근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형생활을 하고 '전과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보도되면서 양심의 자유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과거 반공과 냉전의 논리만이 허락되었던 권위주의 체제하에 '이단' 종교에 빠진 '병역기피자' 라는 이중의 낙인 아래 외면되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91년 이후 총 4천 243명이 종교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여 이중 3천 736명이 항명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바, 한 해 평균 400여명의 집총거부자가 생겨나고 있으며, 현재 전국의 민·군 교도소에 약 1천 6백명이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한겨레신문, 2001.4.18.수)

'양심적 병역거부권'(right to conscientious objection)은 양심의 자유의 핵심적 내용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병역문제가 갖는 민감성 때문에 학계에서나 비학계에서나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였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민주화운동가들이 군입대를 거부하고 활동을 계속하는 경우―이른바 '군(軍) 도바리'―가 있었으나, 이러한 입대거부가 양심의 자유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문제는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특정 종교인의 부담으로 방치되었던 것이다. 이제 드디어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을 진지하게 고려하여야 할 때가 도래하였다고 본다. 첫째,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지 않음으로 현실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이러한 고통이 계속 재생산될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둘째,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은 단지 특정 종교인에게 '특혜'를 베푸는 문제가 아니며, 종교소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체의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먼저 양심의 자유의 내용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원의 태도를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이어 이 글은 외국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나아가 이 권리는 이제 국제법적인 인권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인정하기 위하여 짚고 넘어 가야할 할 몇 가지 쟁점을 정리한다.

II. 우리나라에서의 '양심의 자유'의 정의와 그 보장
서구의 역사에서 양심의 자유는 원래는 신앙의 자유의 일환으로 보장되었다. 양심의 자유는 서구에서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대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배적 종교 하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는 투쟁에 의하여 정립된 자유이다. 미국의 1776년 버지니아 헌법, 독일의 1818년 바이에른 헌법, 1850년 프로이센 헌법, 1919년 바이마르 헌법 등은 두 자유를 한 틀에 묶어 보장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조선시대 말 천주교도의 순교, 일제치하에서 기독교도의 신사참배 거부 등 양심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가 동시에 침해되는 사건도 있었다.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심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와는 구별되는 정신적 기본권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우리 헌법 제19조 역시 양심의 자유를 신앙의 자유와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의 규정방식이 어떠한가와 관계없이,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양심의 자유가 시민의 기본적 인권임은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다른 각종의 정신적 자유, 예컨대 사상, 학문, 학문, 예술의 자유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중첩되어 발현하기 마련이다(특히 우리 헌법의 경우 사상의 자유보장에 대한 명문규정이 없으므로 우리 헌법 제19조는 사상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권영성, 『신판 헌법학원론』(1999), 428면; 김철수, 『헌법학개론』(제11전정신판, 1999), 563면; 허영, 『한국헌법론』(신정13판, 2000), 371면)

우리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를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헌재 1996.3.27, 96헌가11.)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도 포함"(헌재 1991.4.1, 89헌마160. 이 결정은 '사죄광고'의 강제가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는 취지의 결정이다)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양심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외의 어떠한 정신적 자유보다도 제1차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정신적 기본권이며, 또한 민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발전을 최후에 담보하는 정신적 기본권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양심의 자유는 양심을 형성하고 결정하는 '내심의 자유'(forum internum)는 물론이고, 자신의 양심에 대하여 침묵할 수 있는 '침묵의 자유'가 포함된다. 헌법재판소의 말을 빌자면,

양심의 자유에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다른 나라의 헌법과 달리 양심의 자유를 신앙의 자유와도 구별하고 사상의 자유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 별개의 조항으로 독립시킨 우리헌법의 취지에 부합할 것이며, 이는 개인의 내심의 자유, 가치판단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리의 명확한 확인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가 되고 인간의 내심의 영역에 국가권력의 불가침으로 인류의 진보와 발전에 불가결한 것이 되어 왔던 정신활동의 자유를 보다 완전히 보장하려는 취의라고 할 것이다.(헌재 1991.4.1, 89헌마160.)

그런데 양심의 자유의 한계와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내심의 자유'의 경우는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으로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대판 1984.1.24, 82누163.) 그러나 '양심실현의 자유'(forum externum)는―소극적으로 양심을 지키는 침묵의 자유이건, 적극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이건―"타인의 기본권이나 다른 헌법적 질서와 저촉되는 경우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로 파악되고 있다.(헌재 1998.7.16, 96헌바35.) 요컨대 우리 법원은 양심의 자유가 내심에 그치는 한에서만 제약을 받지 않을 뿐이지, 양심이 소극적으로건 적극적으로건 외부로 표출될 때는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보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거부한 여고생에 대한 제적처분은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결(대판 1976.4.27, 75누249.), (구)국가보안법 제10조의 '불고지죄'가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 않는다는 결정(헌재 1998.7.16, 96헌바35.), (구)사회안전법이 '전향' 여부를 보안처분면제요건 또는 보안처분기간의 갱신여부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결(대판 1997.6.13, 96다56115.), 보안관찰법상의 보호관찰처분은 피보안관찰자의 재범방지를 위해 내려지는 특별예방적 처분이므로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 않는다는 결정(헌재 1997.11.27, 92헌바28.) 등이 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한 본격적 비판은 차후로 미루기로 하겠으나, 여기서는 양심의 자유라는 것이 그 실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양심실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 하더라도 그 제한의 방법과 정도가 타당한 것인지 등은 철저히 따져보아야 한다는 점만 짚어두기로 한다. 한편 이 글의 주제인 양심적 병역거부권 역시 법원에 의하여 일관되게 부인되어 왔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가진다고 되어 있어서 병역법은 위 헌법의 규정에 따라 제정된 것으로서 같은 법의 규정에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이상 모든 국민은 다같이 이에 따라야 하며, 피고인이 '애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를 신봉하고 그 교리에 크리스토인의 '양심상의 결정'으로 군복무를 거부한 행위는 응당 병역법의 규정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된다.(대판 1969.7.22, 69도934. 동지의 판결로는 대판 1955.12.21, 65도894; 대판 1976.4.27, 75누249; 대판 1985.7.23, 85도1094 등을 참조하라.)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입영 자체를 거부하면 병역법 제88조의 '입영기피죄'로,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하면 군형법 제44조의 '항명죄'로 단호하게 처벌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징병제는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필수적 권한으로 이해되고, 어떠한 이유든 간에 병역거부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비애국적' 범죄행위로 처벌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과 신조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주는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그렇다면 이하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 그리고 국제법적으로는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III.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국제적 보장의 현재
1. 헌법적 보장과 그 논리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된 최초의 사례는 1776년 미국 펜실바니아주 헌법이다. 동 헌법 제8조는 "집총을 하는 것에 대하여 양심적 가책을 느끼는(conscientiously scrupulous) 어떠한 사람도 그가 대체복무를 하려 한다면(if he will pay such equivalent) 집총하도록 강제될 수 없다"라고 선언한다(Pa. Const. of 1776, art. 8.). 이러한 입장은 1777년 버몬트주 헌법(제9조), 1776년 데라웨어주 헌법(제10조), 1784년 뉴햄프셔주 헌법(제13조) 등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려면 병역거부가 "무엇이 옳고 틀린 것인가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또는 종교적 믿음에서 도출되어야 하며, 이러한 믿음은 전통적인 종교적 신념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Welsh v. United States, 398 U.S. 333, 340. 1970),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는 특정 전쟁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일체의 전쟁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Gillette v. United States, 401 U.S. 437 (1971). 단 더글라스 대법관은 특정전쟁에 대한 반대도 '양심적 병역거부'로 포함시킨다 .

현대에 들어서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유럽 여러 나라에 걸쳐 헌법에 명문화된다.(Honorable Jose de Sousa e Brito, "Political Minorities and the Right to Tolerance: The Development of a Right to Conscientious Objection in Constitutional Law", 1999 B.Y.U. L. Rev. 607, 611-12.) 유럽에서는 독일 헌법이 선구자인데, 1949년의 독일 헌법 제3조는 유럽에서 "누구도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무장투쟁을 포함하는 군복무를 강제당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였으며, 이어 1976년 포르투갈 헌법(제41조 5항), 1978년 스페인 헌법(제30조 2항) 등도 동일한 내용을 선언하였다.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던 동구 여러 나라도 체제 붕괴 이후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에서 명문화하고 있다. 예컨대 크로아티아 헌법(제47조), 슬로베니아 헌법(제123조), 에스토니아 헌법(제124조), 슬로바키아 헌법(제25조 2항), 체크 공화국 헌법(제15조 3항), 그리고 러시아 헌법(제28조)등이 있다. 한편, 유럽 외에는 브라질, 우루과이, 수리남, 잠비아 등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에서 인정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헌법적 보장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1940년 'Minersville School District v. Gobitis 판결'(310 U.S. 586 (1940) (Stone, J., dissenting)의 다수의견이 국기경례의식이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 외로이 소수의견을 제출한 스톤 대법관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국기경례의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루어진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 대한 제척처분이 합헌이라는 보는 다수의견은 "소수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대중적 의지(popular will) 앞에 굴복시킨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강력히 비판하였다.(위의 글, 606.) 민주주의란 다수의 지배이지만, 다수의 지배의 이름 하에 소수자의 양심과 신념을 무시하는 것은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임을 그는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톤 대법관의 이러한 입장은 이후 1943년 'West Virginia State Bd. of Education v. Barnette 판결'(319 U.S. 624 1943)에서 다수의견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어떠한 방식으로건 국가가 시민에게 말 또는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다를 수 있다는 자유(freedom to differ)는 사소한 사안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며,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하여 다를 수 있다는 자유"라고 선언하였다.(위의 글, at 641-642 강조는 인용자)요컨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헌법적 보장은 병역의무라는 국가존립을 위한 핵심적 사안에 대하여도 이를 거부하는 소수자집단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선언이다. 이는 소수자의 양심이 아무리 국가질서에 위협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양심을 헌법적 차원에서 용인·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이는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 민주주의의 핵심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 하겠다.

2. 국제법적으로 승인되어 가고 있는 인권
(1) 유엔
이상과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국제법적으로도 수용되어 가고 있다. 먼저 '시민·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ICCPR) 제18조 1항은 '양심·사상·종교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는데(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art. 18(1), 여기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이 규약초안 작성시에 필리핀 대표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포함시키는 제안을 하였다가 철회한 바 있다.Marie-France Major, "Conscientious Objection and International Law: A Human Right?", 24 Case W. Res. J. Int'l L. 349, 357 (1992). 과거 전통적 견해는 이 조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위의 글). 그러나 근래의 국제사회에서는 제18조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흐름이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최초의 유엔 차원의 결의는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1987년 결의인데(E.S.C. Res. 1987/46, 43 U.N. ESCOR Supp. No. 5, at 108-109, U.N. Doc. E/1987/18; E/CN.4/1987/60, 1987), 이 결의는 각 국가에게 "종교적, 윤리적, 도덕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발생하는 심오한 신념"에 기초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라고 호소하였다. 단, 이 결의는 해당 국가에서 최종적 재량을 남겨두는 조언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Matthew Lippman, "The Recognition of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as an International Human Right", 21 Cal. W. Int'l L.J. 31, 51 1990-91).

이후 동 위원회는 1989, 1993, 1995년의 결의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세계인권선언' 제18조와 ICCPR 제18조 속에서 근거지웠다. 1989년 결의는 호소 수준을 넘어서 세계인권선언 제3조, 제18조 및 ICCPR 제18조에 기초하여 양심적 병역거부권 자체를 인정하였고(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Hum. Rts. Comm. Res. 1989/59, U.N. ESCOR, 45th Sess., 55th mtg. at P 1, U.N. Doc. E/CN.4/1989/59, Preamble, P 1.),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문제를 유엔헌장상의 국가의 의무와 연결시켰다(위의 글). 그리고 1993년 결의는 이전의 결의내용을 재확인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한지 않은 국가에 대하여 특정 사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효한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국내법체계 속에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의사결정기구"를 만들 것을 호소하였다(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Hum. Rts. Comm. Res. 1993/84, U.N. ESCOR, 49th Sess., 67th mtg. at P 1, U.N. Doc. E/CN.4/1993/122, P 7.). 또한 1995년 결의는 1993년 결의의 내용을 재확인한 후,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다. 즉, 동 결의는 각 국가가 법과 관행에 의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가진 특정신념의 본성을 이유로 그들을 구별하지 말 것, 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병역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Hum. Rts. Comm. Res. 1995/83, U.N. ESCOR, 51st Sess., 62d mtg. at P 1, U.N. Doc. E/CN.4/1995/176, P 4.)

한편 ICCPR 제18조에 대한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mmittee'의 1993년 '총평'도 동일한 결론을 제출하였다(U.N. Hum. Rts. Comm., General Comment 22 <48> (art. 18) P 11.). 동 '총평'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규약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동 위원회는 살상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양심의 자유 및 자신의 종교 및 신념을 표현할 권리와 심각하게 충돌할 수 있으므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규약 제18조에서 도출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그들이 가진 특정신념의 본성을 이유로 구별해서는 안되며, 또한 마찬가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병역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같은 곳)한편 '종교 또는 신념에 따른 일체의 불관용과 차별의 제거를 위한 선언'이 이행되는지를 점검하는 '특별보고관'의 1997년 보고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Implementation of the Declara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Intolerance and of Discrimination Based on Religion or Belief: Report Submitted by Mr. Abdelfattah Amor, Special Rapporteur, in accordance with Commission on Human Rights REsolution 1996/23, U.N. ESCOR, Hum. Rts. Comm., 53d Sess., Provisional Agenda Item 19, U.N. Doc. E/CN.4/1997/91. 1996). 이 보고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침해태양(態樣)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예컨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불인정, 시민권 박탈, 시민적 권리 박탈, 병역거부를 이유로 한 투옥, 그리고 대체복무제도의 부존재 등이다.(Id. Vol. 7, P 21(a)

(2) 유럽
한편 유럽의 경우(Lippman, at 46-47; Major, at 359-361 참조) 1967년 '유럽회의'의 '자문의회'(the Consultative Assembly of the Council of Europe)는 '결의 337'를 통하여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였다. 이는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는 '유럽인권규약' 제9조에 의거한다. 이후 이 결의에 기초하여 1987년에는 '유럽회의'의 '장관위원회'(the Committee of Ministers)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각국에 국내법과 관행을 변경하도록 요청하는 '추천 87(8)'을 채택하였다. 한편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는 1983, 1989년의 결의를 통하여 이상의 점을 재확인한다.

3. 각국별 '양심적 병역거부권' 보장의 현황
한편 전세계 국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1997년의 유엔 사무총장의 보고서가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The Question of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Report of the Secretary-General prepared pursuant the Commission resolution 1995/83, U.N. ESCOR, 53rd Sess., Provisional Agenda Item 23, U.N. Doc. E/CN.4/1997/99) 먼저 1997년 현재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징병제가 없는 국가로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호주, 뉴질랜드, 카나다, 일본, 말레이시아, 사우디 아라비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남아프리카 공화국, 우루과이 등 69개국이고(Id. at Annex II (1), 징병제가 있으나 군복무는 원칙적으로 임의적인 것으로 하는 나라로는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온두라스, 나이지리아, 세네갈 등 13개국이며(Id. at Annex II (2), 징병제가 있으나 실시되지 않는 국가로는 엘살바도르와 나미비아의 2개국이다.(Id. at Annex II, Table II.)

한편 징병제가 있으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에게 민간에서의 대체봉사 또는 군내에서의 비무장복무를 국가로는 독일, 덴마크,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노르웨이, 스페인, 핀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폴란드, 체크 공화국, 헝가리, 케이프 베르드, 사이프러스 등 25개국이다(Id. at Annex II (4).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장한 군부대 내에서 비전투임무를 부여하는 것을 법률로 허용하는 2개의 국가가 있으며, 법률로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사안별로 임시적으로 이러한 조치를 하는 3개의 국가가 있다.(.Id. at Annex II(5)(a)(b).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국가로는 남북한을 포함하여, 중국, 싱가포르, 캄보디아, 타일랜드, 필리핀, 베트남, 그리스, 터키, 소말리아, 수단, 에티오피아, 예멘,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알바니아, 그루지아, 알제리아, 과테말라, 도미니카,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베네주엘라, 칠레, 콜롬비아, 쿠바, 페루, 혼두라스 등 48개국이 있다.(Id. at Annex II(6). 이와 관련하여 우리와 달리 이스라엘의 경우는 병역거부에 대한 형량은 30일 유기징역에 불과함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IV.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 실현을 위한 몇 가지 점검사안
이상에서 우리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세계 민주주의국가의 국내법과 국제인권법에서 더 이상 주변적 관심사항이 아니라, 양심·사상·종교의 자유의 기본적 구성요소로 간주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한국에 실현하기 위해서 몇 가지 점검해보아야 할 사안이 있다.첫째,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특정 종교신자에 적용되는 사안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주로 '여호와의 증인, '제칠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권리의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권리는 '종교의 자유'에서만 도출되는 것은 아니며, 종교와 무관한 '양심의 자유'에서도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두 종교의 신자가 아니더라도 철저한 평화주의자―'불살생'과 '불축살생구'의 계를 철저히 관철하는 불교승려 또는 신도이건, 종교는 없지만 국가가 수행하는 모든 전쟁은 악이라 믿는 자이건―라고 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신념에 차별을 두지 말라는 1995년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결의의 정신이 살아날 것이다.

둘째,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될 수 있는 병역거부의 정도이다. 제3장 1절에서 상술하였듯이 미국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는 특정 전쟁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일체의 전쟁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가상의) '대일본전' 참전은 거부하는데 (가상의) '남북한전쟁'은 참전하겠다고 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니다. 반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특정 전쟁에 국한된 집총거부―이른바 "선택적"(selective) 병역거부―도 그것이 양심에 기초한 것이라면 인정하고 있다(Amnesty International, Out of the Margins: The Right to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in Europe (15 April 1997). 양심의 자유의 철저한 보장이라는 관점에 서자면 후자가 타당하지만, 현 단계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선택적" 병역거부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수용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셋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의 구체적 양태와 기간 문제이다. 먼저 양태와 관련하여 여러 방안을 모색해보아야 한다. 제3장 3절에서 보았던 것처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군부대 내에서 비군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방안도 있겠으나,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정신을 살리자면 대체복무제는 시민적 통제하에 놓여야 하고, 그들이 종사하는 일 역시 비군사적 성격을 띠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존재하는 '공익근무제도'를 활용하되 군사훈련을 면제한다면 구체적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복무의 양태와 기간은 징벌적 성격을 띄어서는 안된다.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이는 군복무 회피의 수단으로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서도 대체복무의 기간을 군복무기간 보다 과도하게 늘려 잡는다거나, 대체복무의 직종을 이른바 '3D직종' 등에 국한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근본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의 기간은 현역복무기간 보다 4-6개월 더 길며, 복무분야도 경찰, 소방업무 등 사회치안분야와 의료서비스, 환경보호, 양로원 봉사 등 사회봉사분야로 구성되어 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넷째,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집총거부의 양심에 대한 판단절차의 문제이다. 신체검사나 징집통지를 받았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은 집총거부이유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고―종교인이라면 신도라는 증명서와 신앙보증서가 첨부되어야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인정여부를 심사하기 위하여 군관계자, 종교인, 윤리학자, 법학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입대한 사람 중에서도 새로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청하는 절차가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며(영국의 경우 신병이 군대에 입대한 지 6개월이 지나기 전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제대하는 것이 허용된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된 사람들에 대한 특별사면 등의 구제절차 역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V. 맺음말
이상에 보았듯이 양심적 병역거부는 단지 소수파 종교집단의 반사회적 행동이 아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는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으며, 국제법적으로도 승인되어가고 있는 인권의 하나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투옥된 사람은 새로운 유형의 "양심범"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의 지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자의 인권을 배척하고 그들의 고민과 신조를 무시하는 다수의 지배는 다수의 전제(專制)일 뿐이다.그리고 양심의 자유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다, 또는 헌법 제39조 1항이 병역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이상 양심의 자유도 이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는 우리 법원의 논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처하는 심각한 상황을 너무도 안이하게 파악하는 결과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집총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양심 또는 신앙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동의하던 않던 간에 그들이 히틀러 치하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신조를 지켰다는 점, 최근까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음에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관되게 집총보다는 감옥을 선택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헌법 제37조 2항 후단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못박고 있다. 마지막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이 되면 혹여 병역기피풍조가 조장되는 것이 아닌가 또는 모든 남성이 군복무를 거부하고 대거 대체복무를 택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인 대만이 대체복무법을 제정·실시하고 있으나, 그러한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여부에 대한 심사 및 이후의 계속적 관찰을 통하여 집총거부신념이 허위로 판명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마련한다면 이 권리가 단순한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법학박사
曺 國(kukcho@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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