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9. 18. 토요일. 하루 우리 반 모습.

하나// 조례시간에 '오리 날다' 함께 부르기

오늘은 토요일이니 시간도 딱 좋다. (엊그제 종례 시간에 시도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했다. 노트북도 말을 안듣고 해서... 그 후로도 이 노래, 계속 연습했다. 아이들 앞에서 함 불러보려고. 오늘은 꼭 성공해야지) 아침 조례 전에 내 노트북에 체리필터의 '오리날다' 뮤직비디오를 띄워놓고 수정이에게 전화해서 교실에 설치를 부탁하고 가사를 다시 복사해서 오려가지고... 올라갔다. 오늘 조례시간에는 노래만 해야지. 이 가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밤마다 달을 향해 날기를 연습하는, 결국 날아올라 달과 함께 춤추는 이 새끼오리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같이 노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반 아이들 저 모습을 보라. 영 맹맹하다. 노래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 두 눈은 모두 뮤직비디오로 가서 박히고 입은 "체리필터 별로 안 예쁘데이.. 어쩌고 저쩌고 조잘조잘 ^(%*^&#$&)*)" 이러고들 있다. 에잉... 나라도 하자 싶어 아픈 목에도 불구하고 '느들 안 하면 내 혼자 한데이~ 날아올라~ 저하늘로~' 갑자기 아이들이 마구 웃어댔다. 복도쪽 창을 보니 선미샘이 지나가다 내 꼴(!)을 보고는 창에 기대있다. 부끄럽지만 하는 수 있나. 끝날 때까지 계속~

그리고 칠판에 썼다. '오리도 노력하면 날 수 있을까? 너희들 모두 날아올라 저 빛나는 달과 함께 춤추기를 바래'

둘//  8.9월 생일잔치 

오늘 아침 늦잠. 40분에 일어났다. 씼고.. 도시락을 챙겼다. 오늘 생일잔치는 '도시락'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냥 보리밥에 있는 반찬 몇가지 챙겨넣어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아침엔 생일수첩, 생일돼지, 사진기, 그리고 내 도시락을 챙겨 쇼핑백 속에 넣어두었다. 영어샘께 3교시 빌린 것을 다시 확인시켜드리고 수업이 비는 2교시엔 잠깐 학교앞 문방구에 가서 예쁜 편지지를 샀다. 시간이 남을 경우, 자신의 꿈에 대해 써보라고 할 참이다.

늘 그랬듯 3교시에 4교시 한문 수업을 땡겨서 하고 4교시.. 일단 도시락을 까먹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처럼 2교시, 3교시 마치고 자기 도시락은 먼저 까먹어 버리고 친구들꺼 넘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급식땜에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경혐을 못하는데.. 귀여웠다. 그렇게 당부했건만 컵라면에 물 부어서 앉아있는 녀석도 있었다. ㅎㄴ이, ㅅㅁ이, ㄱㅇ이, ㄷㅎ, ㅇㅅ이, .. 10명 정도 될까? 짐짓 화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녀석들 빼고는 모두 집에서 싸온 밥을 아이들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녀석들도 아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못싸왔을 지도 모른다.

1학기 때도 도시락 싸오기 한 적 있었는데(교생 선생님 왔을 때. 5월말이구나) 그때 보다 아이들이랑 나랑 많이 살가와졌나보다. "선생님 이거요. 먹어보세요. 제것두요..." 아이고 고마워라~ ^^ (아이들이 이렇게 말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뻘쭘한지... 나는 내 도시락만 꾸역꾸역 먹어야하잖아? ^^) '떠들면 느그 담임 잘린다'고 협박해서 조용히(정말? ^^;) 밥을 먹고 생일 당한 아이들 기념 촬영하고 수첩이랑 돼지 나눠주고...

그러고도 시간이 20분이나 남았다. 편지지 준비해두길 잘했지. 칠판에 썼다. 1. 나의 꿈에 대하여. 2. 미안한 사람에게 편지 쓰기. 3. 샘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 주제들 중에서 편한 것을 잡아서 글을 한 번 써보라고. 아이들 마음이 열리면 작은 준비로도 알찬 활동이 가능한 것 같다. 조금 진지한 이야기 해주고 '글 쓰는 연습'은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애기해주니 아이들이 모두 편지를 열심히 썼다. 너무 예뻐서 죽을뻔 했다. 모두들 어찌나 열심히들 쓰는지. 아마도 지난 수요일 들려준 내 이야기 -내 꿈이었던 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를 해준것과 오늘 아침 '오리날다'가 유효한 것이겠지.

편지를 걷고 돌려보냈다. 구름이 살살 걷히고 하늘 한 귀퉁이에선 파란 하늘이 빼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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