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 ‘주방’… 비위생… 성희롱

현장체험 고발? 신은진기자 4週 잠입취업 르포
애정표현? 야한 농담·엉덩이 때리기도 ‘청결’ 둔감…
매뉴얼 무시 맨손 작업 ‘알바 식당’ 창고엔 음식쓰레기 악취


[조선일보 신은진 기자]
주방에서 남성 점장의 비유법은 늘 ‘여자’에 맞춰져 있다. 남학생들이 햄버거를 종이로 쌀 때 “살살 포장해라”는 말을 “○○을 만지듯 싸라”고 한다거나, 대걸레로 바닥을 거칠 게 닦으면 “부드럽게 닦으라”는 말을 “여자친구에게도 그렇게 할거냐”고 표현하는 식이다. 좀 친하다 싶으면 남녀 불문하고 엉덩이를 때린다.

하지만 고교생 직원들은 싫은 내색을 못했다. 점장이 무섭기도 하거니와 이런 행동을 애정 표현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상관에게 얼굴을 붉히는 것도 민망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4일 토요일 오후 10시쯤. 주방에서 ‘와장창’ 하고 유리그릇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계산대에서 주문을 받던 고1 L(16)양은 놀라 말을 멈췄다. 여성 매니저(고참 정규직원)가 설거지를 끝내놓은 유리 팥빙수 그릇을 거칠게 싱크대에 던져넣는 소리였다.

이날 ‘마감장’(長:마감조 조장)인 고2 H군은 “저 매니저는 ‘저기압’일 때면 화장실에서 뭐라고 소리를 질러요. 사무실에서 종이 집어던질 때도 있고요. 분리배출 해놓은 쓰레기를 몽땅 다 뒤집어 놓을 때는 차리리 욕을 하고 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고1 P(16)군은 “그래도 우리 매장은 좋은 편이예요. ○○○점 점장은 아르바이트생이 말을 안 듣는다고 발등에 가위를 던져 피를 내고도 치료는커녕 손 들고 벌서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패스트푸스점에서 주방·사무실·창고 같은 직원들만의 공간인 ‘백(Back)’은 비교적 깔끔한 손님들의 공간인 플로어(Floor:혹은 라운드)’의 세계와 다르다. 이곳에서 고교생들은 어른들과 상대하면서 ‘원리·원칙과 다른 현실’를 배워간다.



대부분의 패스트푸드점은 주방에 ‘QSC & V’와 관련된 표어를 붙여두고 있다. ‘품질(Quality)’ ‘봉사(Service)’ ‘청결(Cleanliness)’ ‘가치(Value)’의 약자이지만, 이중 본사(本社)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청결’이다.

주방 세면대 위에는 손을 씻는 방법이 그림 설명과 함께 붙어있다. ‘살균 비누로 거품을 내어 손가락 사이, 손톱 주변까지 적어도 20초 동안 구석구석 세척한다’ ‘손소독액을 골고루 뿌려준다’ 등등. 손을 꼭 씻어야 하는 경우로 ‘테이블 청소 후 제품 제조시’ ‘머리카락, 얼굴, 옷 기타 만졌을 때’ 등 9가지가 열거돼 있다.

하지만 정작 매장 어디에도 살균비누와 손소독액이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사용하는 세수비누뿐이다. 미용에 한창 관심이 많은 고2 K(17)양은 오히려 나에게 “(손이) 거칠해지니까 자주 씻지 말라”며 “나는 밥 먹기 전, 화장실 갔다온 뒤에만 손을 씻는다”고 말했다. K양은 계산대에서 일하지만 종종 음식 튀기는 일도 하고 음료를 담아내기도 한다. 음료 컵에 얼음을 풀 때도 손에 쥔 컵을 얼음통에 담아 그냥 퍼담는다. 원칙은 전용 소형 주걱으로 얼음을 컵에 퍼담아야 하지만, 이 주걱 역시 찾을 수 없었다.

햄버거를 만드는 남학생 역시 맨손으로 작업했다. 양상추를 찢고, 번스(햄버거빵) 속에 패티(햄버거 고기)를 넣을 때도 맨손으로 만졌다. 이 경우에도 매뉴얼(작업 수칙)이 있다. 하지만 매뉴얼을 적어 붙여놓은 종이는 색상이 변하고 너덜너덜해져 글자 판독이 어려웠다.

위생에 대한 고교생 직원들의 무감각은 정도를 넘어설 때도 있었다. 패티가 바닥에 떨어지자 불에 살짝 구워 다시 내놓고 번스가 떨어지면 툭툭 털어 올려놓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래도 되냐”고 묻자, 한 고교생 직원은 “발로 밟아서 모양이 이상해지지만 않으면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게으름과 무감각은 어른들에게 배우는 측면이 많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선 매일 오후 9시30분 프라이다운(감자·치즈스틱·치킨 등을 튀긴 기름을 가는 작업)을 한다. 이때 검사지를 넣어 기름 상태를 측정해(종이 색깔이 밝아질수록 나쁜 것) 좋지 않으면 새 기름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고1 P(16)군은 “나이 많은 점장님의 경우 그냥 눈으로 색깔을 보고 ‘하루 더 쓰자’고 한다”며 “아마 검사하는 종이가 장당 900원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백’ 공간에서 가장 지저분한 곳은 창고, 즉 고교생 직원들이 15분 동안 식사하는 곳이다. 창고에는 손님들이 사용을 끝낸 재활용컵, 샐러드용기 등이 쌓여 있다. 며칠 된 재활용 용기에서 썩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났고 작은 벌레들도 날아다녔다. 처음에 인상을 찌푸리자 고2 J(17)양은 “냄새 때문에 처음 여기서 먹을 때 토하는 줄 알았는데 먹다보면 적응이 된다”고 말했다.

(신은진기자 momof@chosun.com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