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노동은 투쟁의 산물 - 홍세화『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중에서
어리석은 質問으로 이 글을 始作하기로 하자.
왜 당신은 하루 평균 8시간 일하는가? 6시간이나 4시간이 아니라, 또는 10시간이나 12시간이 아니라 왜 8시간 동안 勞動을 하는가? 어떤 사람의 말처럼, 하루 24시간을 셋으로 나누어 8시간은 잠자고 8시간은 일함으로써 나머지 8시간을 자유로운 시간으로 갖기 위함인가?
또 당신이 일주일 중 하루, 일요일에 쉬는 까닭은 무엇일까? 누구의 말처럼 安息日이어서일까?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다음 하루를 쉬었으니 하느님의 창조물인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1831년 프랑스 리용 地方 견직공들의 勞動 시간은 하루에 18시간이었다. 새벽 5시에 일을 始作하여 밤 11시에 끝나는 하루 일과를 당신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24-18=6이라는 간단한 산술, 즉 勞動시간을 뺀 나머지 6시간은 잠자는 시간으로도 不足하지 않은가. 그들은 그렇게 노예보다 더 심하게 일했음에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 社會 不義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그들은 마침내 罷業을 일으켰고 -그 罷業은 산업자본주의 초기에 일어난 최초의 罷業이었다- 분노의 파도가 되어 리용 시청을 점령하였다.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진압되었으면 수많은 견직공들이 처형되었다. 그들의 투쟁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이 흘린 피가 18시간의 勞動 시간을 14시간으로 줄이는 데 이바지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테면, 오늘 당신이 하루 18시간이 아니라 8시간씩 일하고 있는 데에는 프랑스 리용 견직공들이 흘렸던 피의 대가가 조금은 담겨 있는 것이다.
인도 사람 마하트마 간디였던가. “自然은 지구상 모든 사람의 필요를 充足시켜 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滿足시켜 주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경쟁 속에서 최고의 이윤을 뽑아내야 하는 자본의 貪慾도 결코 만만치 않다. 오늘날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은, 또 우리들은 파키스탄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소녀들이 하루 14시간 동안 勞動에 혹사당하고 있다면서 人權을 내세우며 비난하고 있다. 옳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는 짐짓 外面하고 그런 나라들에 눈총을 보내고 비난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찰스 디킨스나 에밀 졸라의 19세기 小說들에는 나이 어린 少年들이 하루 14시간씩 석탄 캐는 일에 나서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 少年勞動은 예외가 아니라 당연한 現實이었다. 마르크스의 영원한 친구 엥겔스는 일찍이 산업자본주의 社會에서 가족 전체가 어떻게 노동시장에 편입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즉,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가족 중 家長 한 사람만 노동에 專念하면 가족의 生計가 可能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가족 모두 勞動에 종사하지 않으면 生計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10여 세 少年들이 하루 14시간 동안 일하지 않으면 가족의 生計가 어려울 만큼 자본은 최저의 임금과 최장의 노동시간으로 인간 勞動을 수탈했던 것이다. 이 점은 임금 조건과 노동시간이 最低生計費와 연계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뒤집어 말하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투쟁과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동전의 兩面이었던 것이다.
수탈, 착취, 억압이 잇는 곳에 항거와 투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 社會의 자연법칙이다. 일요일 휴무가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게 아니라 대혁명을 통해 획득되었듯이, 14시간 노동이 12시간으로, 다시 10시간으로 줄어든 것도 勞動者들의 투쟁의 産物이었다. 오늘날 전 世界에서 勞動者들의 생일이라고 기념하고 있는 5월 1일 - 메이데이 - 노동절도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이 1888년에 8시간 노동제 획득을 위해 벌였던 파업 투쟁을 記念하는 날이다. 그 파업 투쟁 또한 프랑스 리용 견직공들의 罷業처럼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어 勞動者들은 시위 현장에서 총탄에 쓰러졌고 主動者는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이 8시간 노동제를 획득하는 데 이바지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오늘 10시간이 아니라 8시간 勞動을 하고 있는 데에는 미국 시카고노동자들이 흘린 대가 또한 조금은 담겨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質問을 하나 더 던지기로 한다. 우리나라 勞動者들이 다른 나라 勞動者들의 노동조건을 改善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