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
니가 담배를 핀다고 우리 반 아이가 아닌 것은 아니다.
내 사랑하는 40명 중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니지.
니가 담배를 핀다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네 문제다.
근데 많이 놀랐다. 맘도 아프고... 이유는?
솔직히 솔직히 말이다, 그동안 너를 믿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1학년 때 비해서 다른 샘들-국어샘도 영어샘도 너를 많이 이뻐하시거든- 칭찬도 많이 받고 반 아이들도 잘 도와주고 생글생글 웃기도 잘하고..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야자 안하고 보충 안 해도 내가 다 보내 줄 수 있었던 건 너를 믿었기 때문이야. 지난 몇 달 동안 너무 잘 해주어서 니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단다.
그렇게 쭉 믿어왔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프네. 그래서 아까 너희들을 봤을 때 그 마음이 표정에 잔뜩 묻어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섭섭했니? 미안했니?
그래도 수*아,
나는 말이다, 끝까지 너희를 믿을 거다.
(끝까지 믿어주고 도와주는 것 말고 담임으로서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끝까지 믿을께.)
결국은 니가 니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되는 순간에 분명히 담배를 끊을 것이고
사회는 너희에게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가겠지.
남성우월적 문화 속에서 똑같이 담배 피다 걸려도 여학생은 더더욱 죄인 취급 받는다.
우선 나부터도 그렇거든.
남자애들이 담배를 피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여자애들이 그랬다고 하면 한 번 더 돌아봐지지.
솔직히 그렇다. 사회에 나가면 더 심해지지.
그래서 결국엔 끊게 될 거라고 믿어.
그렇지만 수*아,
너랑 ##이는 아기를 낳아야 하잖아.
담배피면 아기가... 알지? 건강하고 너처럼 예쁜 아기 낳아야지.
아기가 아프면 엄마 인생은 없어지는 거야.
내가 제일 바라는 건 이번 일을 계기로 너희가 담배 끊는 것!
할 수 있겠지?
너를 위해서, 또 엄마를 위해서. 엄마가 너무 힘드시잖아.
엄마가 무슨 죄인이라고 이런 일로 이런 날씨에 학교에 불려나와서 샘들 꾸중 들어야하는지..
엄마 입장 생각해봤지? 그럼 이쯤에서 착한 딸로 돌아가자. 할 수 있겠지?
엄마가 네게 바라는 것, 정말 니가 해드릴 수 없겠니?
나? 담임인 나는 냉정하게 말하면 내년이면 또 다른 아이들 만나서 아웅다웅 살아가겠지.
너희들이랑 보낸 올 한해 추억이 되어 되돌아보고 그러겠지.
그렇지만 하루하루 만들어 가는 니 삶은 영원히 니 것이 되고, 니 미래가 되고...
그건 화초를 보살피듯 그렇게 정성들여 가꾸고 보살피고 해야되는 거야.
니 삶이잖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니 스스로 니 인생을 사랑하려면 우선 남에게 당당한 마음부터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너희들 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만큼 충분히 예쁜 아이들인데
샘들께 이런 일로 심하게 꾸지람 듣는 것, 옆에서 지켜보는 거 자체가 나는 너무 힘이 드네.
지금으로선 솔직히 너희들 야단칠 자신이 없네.
이미 너무 많은 야단을 듣고 울고...
받아야 할 벌 진심으로 뉘우치며 받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
잘못 인정했으면 고치면 되지 뭐.
잘못은 누구나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지.
2004. 8. 7. 교무실에서 강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