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욜 수업은 두 시간밖에 없다. 것도 무난한 반으로.. 근데 안희숙샘이 야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 어쩌나? 이젠 부탁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데.. '몸 상태 봐가면서'라고 답을 해두었다. 오후에 희숙샘한테 야자감독을 내가 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 감독하고 저녁먹고... 느티나무 서재에 들러 음악-가요를 들었는데 갑자기 반 아이들에게도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비가 비실비실 오는 저녁..밤.. 고즈넉하게 낮은 노래소리가 아이들에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된다면... 혹시 싫어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래도 시도해보자. 얼렁 노트북을 떼내어서 교실로 가지고 갔다. 노래를 들으며 칠판에 가사를 옮겨놓았다.

사랑하게 되면 -안치환

나 그대가 보고파서
오늘도 이렇게 잠 못 드는데
창가에 머무는 부드런 바람소리
그대가 보내준 노랠까
*보고파서 보고파서
저 하늘 넘어 그댈 부르면
내 작은 어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 곁으로 날아오르네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람아

아이들은 "샘~ 아저씨노래! 아줌마 같아요" 한다. 야자 2교시 종이 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자습 분위기를 잡아주고 노트북을 가지고 옆반으로 갔다. "노래 한 곡 들을래?" "신화요? !" , "아니 곡목은 내가 정해. ^^"  "샘 무슨 노래예요?" "^^ 수업시간에 알려줄께~" 그렇게 서너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내 노트북은 무선인터넷이 된다.)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문제의 5반!! 수업시간에 지지리 집중 못해 내게 자주 야단 맞는 아이가 "김치환이다"한다. 예쁘다. 아이들이 '안들린다', '설치지 좀 마라'고 그 아이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나를 생각해 그렇게 면박주는 아이도, 구박 받으면서도 내게 씽끗 웃어주는 녀석도 다 이쁘다. 자습분위기는 의외로 더 조용해졌다. 막 나오려는데 반장 녀석이 한 마디 한다. "샘~ 그 방법 좋은데요. ^^ "  " ^^ "

우리반, 8반, 7반, 6반, 그리고 5반에서만 성공했다. 12반 모든 아이들에게 노래가 나가는 동안의 평온함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무선 아테나가 교실 위치에 따라 말썽이었다. 그렇다고 인터넷 선까지 찾아 연결하고 들려주기에는 넘 번거롭고...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방해가 될거고.. 오늘은 날씨가 안좋아 인터넷이 잘 안될 수도 있으니까(인테넷도 신경통이 있단다. 흐린 날은 잘 안 되는.. ) 못들려준 반에는 꼭 다음번 감독할 때 들려주어야지.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도 좋은데... 가을이 더 무르익으면...

야자 감독하면서 반 아이들에게 직접 기타 반주에 노래를 불러주었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이상석 샘의 [사랑으로 매기 성적표]에 나온 이야기였나?) 능력이 안 되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그냥 아이들과 함께 이런 저런 노래, 함께 들으며 그 '시간'을 나누고 싶다.

노트북을 가져다 두려고 교무실로 내려오니 내 앞자리 샘이 2반 3반 아이들을 야단치고 계셨다. "느그 오늘 감독샘이 누고?" 그리고 아이들 매맞는 소리.. 그 모습, 그 소리 듣기 싫어 얼른 자리를 떴다.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 샘과의 거리에 민망하기도 했고, 이럴 때 마주치면 상대를 향한 내 감정을 눈빛으로 들켜버릴 것 같아서.... 그 선생님께 오늘 했던 나의 행동은 어떻게 비춰질까? 현실감 없고 철없는 교사의, 인기에 영합하는 단세포적 행동? 나는 그저 아이들과 나의 삶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이것도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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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두지 않으면 계속 찜찜할 것 같다. 8시 50분 야자 마칠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벌써 가방을 싸고 집에 갈 준비가 끝난다. 그러곤 한 두 명씩 교실을 살짝 살짝 빠져나간다. 최대한 그것을 막아보려고 복도에 서서 "나오면 알지? 10분씩 더 넘긴다.", "머리 내미는 사람, 뭐꼬? 빨리 들어가라" 고함 빽빽 질렀다. 그것 때문에 오늘 아침 목이 갔다. 이런 선생이다. 그나저나 고민이네. 살짝 모른척 해줘야할까?

해콩 2004-09-1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시간에 산만해서 반 아이들로부터도 구박 당하는 강성훈군, 우리반 ㅁ윤이와 사귀고 있는 내 사위 김진규군, 그리고 5반 반장 김정헌군... 아이들 이름 빨리 외워야한다. 지난 1학기 동안 도대체 나는 뭘 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