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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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탄'... 어릴 적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물건이다. 구멍이 뻥뻥 뚫려 잘 맞춰줘야 불을 꺼뜨리지 않을 수 있는... 만약 불이 꺼지면 석가탄(?)이란 걸 써서 매운 연기 마셔가며 연탄에 불을 붙여야했던 어릴 적 기억이 있다. 또하나 잊을 수 없는 건 그 가스를 마셨던 기억.. 혼미한 상태에서 해독제로 마셨던 물김치의 알싸한 맛.. 다 부려먹은 연탄은 집게로 살살 짚어야 부스러뜨리지 않고 대문밖에 가져다 재여둘 수 있었다. 연탄재는 비 온 날 진창에, 학교 운동장에, 정말 간혹 눈이 내린 겨울에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연탄 화덕... 옛 물건들은 다들 아련한 추억과 함께 떠오른다. 그땐 한밤중에 그거 갈아 넣는거 진짜 귀찮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