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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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라면 누구나 다 좋아할 '시', '노래'이다. 이 노래를 꼭 배워보고 싶은데 아직도 아직이다. 꼭 다 외워서 불러봐야지. 다시 읽어보니 누구나 다 좋아할 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서 있지나 않은지... 그건 아니라 하더라도 '나의 입장' 때문에 어떤 강요를 구걸하고 있지나 않은지... 함께 (또는 대신)싸울 용기가 없다면 '담임'을 신청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런.... 늘 자책이라니... 행동하지 않는 반성 역시 나를 위한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