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돌아가는 길

                    -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따라 물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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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6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학생의 날에 2학년 아이들에게 나눠준 시! 1년 뒤 학생의 날을 기억하고 그때까지 잘 보관했다가 내게 가지고 오면 뭔가 훌륭한 것과 바꿔주겠다고 했다. 2학기 개학하고 나서 3학년이 된 그 아이들이 복도에서 나를 불러세우는 일이 잦아졌다. "선생님, 저 아직 그 시 가지고 있어요. 뭐 주실꺼에요?" "그래? 언젠지는 기억하고 있지? 날짜 맞춰서 가지고 와야한다.~" 뭘 주지? 1년 내 숙제로 고민이다. 학생의 날은 물론 17일 수능에도 힘이 되는 의미있으면서 그렇게 부담은 되지 않는 것을 주고 싶은데... 몇명이나 이 시를 가지고 나를 찾아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 뭘 주지? 그 시는 다시 받아서 2학년들에게 나눠줄까 생각중이다. 훼손된 것만 더 만들어 내면? 그래도 많이 만들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