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여름방학 특집 시사탐구생활① 진보매체는 보수를 너무 미워하는 거 아닌가요?
 
 
한겨레  
 

시절이 하 수상타. 하여 어른들 연애상담 잠시 휴업하고, 고삐리들을 위한 여름방학 특집 시사탐구생활 면학지도소, 임시 개점 하는 바이다. 최근 폭증하고 있는, 상식으론 요해 불가요 이해 난망인 각종 사태에 대한 염력 상담 대환영. 고삐리 일체 중생들의 많은 이용,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자, 첫날 상담.


Q 1) 얼마 전 시국선언한 분들에게 아나운서 송지헌씨가 한 발언이 논란이 됐잖아요. 그런데 아나운서라고 해서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못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방송에서 그렇게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게 낫지 어중간한 건 비겁한 거 아닌가요?


A 그렇다. 정치 성향이란, 제 직업에 우선하는 존재 양식. 자신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자체가 죄가 될 순 없는 법. 정치 성향이든 성적 지향이든, 제 정체 오픈하고 살겠다는 거, 박수쳐 줄 일이다. 그거 숨겨야 먹고사는 사회가 후진 게지. 여기까진 노 푸라불럼. 그런데, 그는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전파란 게 공공재거든. 하여 그들에겐, 방송 중 중립이 직업윤리로 요구된다. 그리고 그 덕에 공평무사의 이미지 적립되고. 정치권이 아나운서 영입에 목매는 것도 그 연유지. 인지도에 그런 이미지 더해진 대중적 신뢰도가 탐나서.

자, 그런 그가 인터넷방송에서 제 정치성을 드러냈다. 그 선택은 온전히 그의 권리다. 그런데 본인의 실제 정치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제 직업 덕에 누적된 불편부당의 이미지가,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사적 정치성이 마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인 양 포장되는 데 동원된다면, 그건 기만이거든. 자신이 그렇게 비축할 수 있었던 이미지와 방송권력은, 제 정치성 덕이 아니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방송하려면, 이건 공평무사한 아나운서 송지헌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가진 개인 송지헌이 진행하는 시사방송이라는 걸, 시청자로 하여금 사전인지토록 해야 했던 게지. 그렇게 커밍아웃부터 했어야지. 그게 페어플레이지. 인터뷰를 하건 글을 쓰건 오프닝에 담건, 여하간의 방식으로. 만약 그랬다면, 그의 발언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걸 방송에 드러낸다는 사실 자체는 오히려 지지할 수 있지. 우리 풍토에선. 편파적인 조갑제 아저씨가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 봐선 안 되는 것처럼,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자의 공정 이미지로 개인적 편향을 커버해도, 반칙인 게지.

게다가 “그분들은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안 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왜 그렇게 사실까” 같은 멘트들은, 정치 성향으로 간주해 주기엔 그 논거가 전무하잖아. 이건 그냥 비아냥이에요. 이런 식이라면 실제 커밍아웃된 건 그의 정치성이 아니라 그의 품성이 되고 마는 게라. 특히 자신의 공개발언으로 그 정도의 논란 일면, 제 입장 밝혔어야 한다고. 자신만의 정치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되, 그걸 어떠한 이유로든 드러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면, 그럼 그로 인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단 대가 역시 당연히 지급해야지. 그게 세상 이치거든. 그러니까 문제는 정치적 입장의 공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 내용, 대처가 되는 게라. 이건 여기까지. 질문 더 있나. 있어도 웬만하면 니가 참고. 자, 다음.

Q 2) 진보매체는 보수의 주장을 무조건 비판만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한겨레>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보수의 의견도 경청하고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A 옛날 영국에 에드먼드 버크란 양반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선 게나 고동이나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라 주장하는 보수에게, 내가 니 애비다 이 자슥들아, 할 자격 있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원조 되시겠다. 이 양반 소싯적에 식민본국 영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법치에 대한 도전이요 체제에 대한 모반에 해당될, 미국의 독립전쟁을 대놓고 지지했다 말이야. 그러면서 반란은 오히려 영국 국왕이 했다 했어요. 뭔가 직관적으로 좀 안 맞지. 보수는 기존 질서를 옹호해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그 이유는 이래. 과거로부터 누적된 ‘전통’의 완숙한 귀납이자 공동체가 축적한 역사의 산물로서 ‘자유’와 ‘원칙’이 당장의 왕 하나보다 중요하단 거지. 그래서 ‘자유’라는 ‘원칙’을 억압하는 왕이 오히려 영국의 ‘전통’에 반란을 일으킨 거란 거야. 죽이지 않냐. 원래 보수란 이건 거다. 전통, 원칙, 자유에 목숨까지 거는 기개, 거기 어긋나면 왕과도 한판 뜨는 곤조.



 

» 김어준
 
그래서 헌정 질서란 ‘원칙’을 파괴하고 기본권인 ‘자유’를 속박하는 권력에 그렇게 오랫동안 부역하며 ‘전통’은커녕 미국적 질서에만 복속해온 자들이 스스로를 보수라 말하는 건, 물 먹는 하마 습기 뿜는 소리인 게다. 그렇게 욕망이 이념 행세하며 보신이 신념 구실하고 반북이 철학인 줄 아는 자들이 스스로를 보수라 자처해온 게, 우리네 형편이다. 보수라서 문제가 아니라 보수 아닌 자들이 보수 노릇 해온 게 문제였다고. 그러니까 한겨레가 그들을 문제 삼는 건 그들이 보수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수가 아니라서인 게지. 고로 <한겨레>가 해온 건 비판이 아녀. 쫑코지. 하여 한겨레의 모든 비판은 결국 딱 두 줄로 요약돼요.

근데 말야, 니들은 대체 누구냐.

그러고 밥은 먹고 다니냐.

오늘은 여기까지.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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