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달개비꽃을 으깨 푸른 꽃잎 잉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던 정지용의 글을 읽었다. 1938년 서대문 밖으로 이사 갔을 때 일이다. 편지에다 그는 서울에도 꾀꼬리 울음을 들을 데가 있노라고 썼다. 편지를 받고 황해도 안악 사는 친구는 축하하는 답장을 보내오고, 전라도 장성 사는 벗은 집구경 하겠다고 우정 그 먼길을 찾아 올라왔다.

  망한 나라에서 왜놈의 백성으로 살 수 없다며 이건승이 조국을 등지고 만주로 망명하여 간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해마다 가을이 되면 들국화를 따서 봉투에 담아 만주로 보낸 사람이 있었다. 국과가 피지 않는 만주 땅에서 그 내음 맡으며 망국의 설움을 달래시라는 뜻이었다.

  꽃잎 잉크로 쓴 희미한 편지를 받고 빙그레 웃었을 벗들의 표정과, 조선 들판의 매운 향기를 머금은 국화 꽃잎을 앞에 두고 주루룩 눈물을 떨구었을 뜻 높은 선비의 주름살 팬 얼굴이 선연히 떠오른다. 아마득한 옛일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했다. 무늬 없는 삶 속에는 기쁨이 깃들지 않는다. 생활의 여유는 물질의 풍요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세상일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사람들은 바빠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자꾸 일을 만든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밭은 나날이 황폐해져서, 마음의 무늬가 빚어내는 잔잔한 감동을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살갑고 고맙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정민, [스승의 옥편], <달개비꽃 잉크>, p172~173, 마음산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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