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당당한 수타면, 1000인분을 쳐라!


기사입력 2008-07-24 17:07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매거진 esc] 도쿄 백년 맛집 이야기 간다 마쓰야

100년 인테리어 분위기 속에 먹는 100년 소바…“사위·딸에겐 절대 가업 못 물려줘”


일본으로 떠나오기 전 머릿속에 상상했던 시니세.

6월30일 저녁 8시 땅거미 진 거리에서 바라본 소바(메밀국수)집 간다 마쓰야(紳田 まつや)의 이미지가 딱 그랬다. 농구선수 사이에 선 일반인처럼 현대식 빌딩 사이에 끼인 듯 서 있는 건물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연방 흘러나왔다. 고동색 색감의 목조건물에서 시간과 유행에 완강하게 버티는 고집이 느껴졌다.

상상 속의 시니세와 딱 떨어지는 느낌

상상의 시니세와 현실의 시니세 이미지의 놀라운 일치는 6대손에 해당하는 고다카 다카유키(43)의 외모에도 이어졌다. 앙다문 입술과 180㎝에 90㎏이 넘어 보이는 커다란 덩치에는 ‘듬직하다’는 형용사가 잘 어울렸다. 식당 주방 옆에 1평이 채 안 되는 작업실에서 고다카 다카유키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밀가루 반죽을 쾅쾅 도마에 내리친다. 작업실 사방은 나무칸막이로 막혀 있지만 손님들이 수타면을 만드는 광경을 볼 수 있도록 위쪽은 유리로 돼 있다. 반죽을 내리칠 때마다 삼두박근과 상완근이 꿈틀거렸다. 짙은 눈썹의 사내는 내리친 반죽을 봉으로 밀어 얇게 편 뒤 다시 말았다. 온 신경을 집중해 조심조심 손바닥만한 철판 모양의 소바칼(소바보초)로 반죽을 썰 때마다 간다 마쓰야의 전매특허인 수타소바가 탄생했다.

왜 시니세를 물려받았느냐고 물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고다카 다카유키의 대답 역시 교과서적이다. 그는 “어느새 (소바 만드는 게) 내 일이 돼 있었다. 내 갈 길이 정해져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버지가 ‘너 이거 해야 된다’ ‘이 길을 가라’ ‘요리사가 되어라’ 이런 말은 한 번도 안 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이 일을 돕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기까지 왔다.” 그는 대학 졸업 뒤 3년 정도 다른 일을 경험해볼까도 생각해봤고, 다른 소바집에서 요리 수련을 쌓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만뒀다. “본격적으로 하려면 대학 졸업 직후 바로 시작하라”는 아버지 고다카 도시의 충고를 그대로 따랐다.

내친김에 자식에게도 가업을 잇게 할 것인지 물었다. 고다카 다카유키는 여전히 웃음 없이 무덤덤하게 “3녀1남인데 아직 누가 이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원하면 이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다. “속으로는 먼저 말해주길 바란다. 자발적으로 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건 없다. 아마 한다고 할 것 같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도쿄의 시니세는 서로 알고 지내는 곳이 많다. 고다카 다카유키는 스시코 혼텐의 스기야마 마모루 사장과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그러나 가족 외 다른 사람이 시니세를 이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서 고다카 다카유키와 스기야마 마모루 사장의 철학은 다르다. 고다카 사장이 ‘강경파’라면 스기야마 사장은 ‘온건파’에 해당한다.





거울과 계산기까지 고풍스런 분위기에 한몫

고다카 다카유키는 아들이 가업 잇기를 거부한다면 간다 마쓰야 간판을 내릴 생각이다. 수타면을 직접 만들고 가게를 경영하는 일은 딸들이 하기엔 너무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스시코 혼텐처럼 사위에게 가업을 잇게 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묻자 “사위가 계승한다고 해도 맛은 그렇게 쉽게 계승되는 게 아니다. 맛이 달라질 게 불 보듯 뻔한데, 그리고 손님들한테 ‘맛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게 뻔한데 그걸 그대로 용납할 순 없다”고 말했다. 딸과 사위가 소바집을 연다면 맛에 대한 도움은 주겠지만 간다 마쓰야란 이름은 쓰지 못하게 할 것이란다.


간다 마쓰야는 1884년 후쿠시마라는 성을 가진 평민이 처음 열었다. 23년 간토대지진으로 건물이 다 무너지고 일대가 폐허가 됐다. 간다 마쓰야도 문을 닫을 처지가 됐는데, 당시 근처에서 술집을 경영하던 고다카 다카유키의 증조할아버지가 이를 인수했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고다카 다카유키는 인수자의 4대손이며, 연대기상 간다 마쓰야 창업자와의 나이차를 계산하면 약 6대째에 해당한다.

가업을 잇는 데는 게이오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한 아버지 고다카 도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장남이었다. 대신 동생들은 회계사와 판사가 됐다. 고다카 도시는 “다른 소바집은 일하는 게 힘들어서 장남들이 많이 도망가 차남이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은 운이 좋아 계속 장남이 가업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의자와 탁자가 모두 오래된 질감의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입구에 걸린 거울은 소바집을 인수한 증조할아버지가 술집을 운영할 때 쓰던 100년 가까이 된 ‘보물’이다. 고즈넉하다. 소바를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지금 당신은 100년 넘은 소바집에서 100년 넘은 맛을 먹고 있습니다’라고 일깨워주는 느낌이랄까? 계산대의 독일제 젠마크 계산기 역시 고풍스런 분위기에 한몫한다. 쇼와 5년(1930년)부터 썼다는 계산기를 아직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고다카 도시는 심드렁하게 “그냥 버리지 않아서 쓴다”고 답했다.

고다카 다카유키가 심각한 표정으로 정성스레 만든 모리소바(찬 소바)는 본가다랑어 국물로 만든 쓰유(간장)에 적셔 먹었다. 짭짤하고 시원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온면에 해당하는 가시와 난반 국물을 떠넣었다. 첫맛은 약간 비릿했지만, 뒷맛은 구수했다. 가시와 난반의 국물은 ‘고등어 부시’(고등어를 말려 가루로 낸 것) 등 세 종류의 서로 다른 부시(가루)로 맛을 낸다. 자극적이지 않고 웅숭깊었다.

메밀 공급하는 가게와 5대째 관계

100년 넘은 맛의 비결에 대해 고다카 다카유키는 좋은 재료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수타법 기술은 면을 기계로 뽑는 다른 소바집과 비교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간다 마쓰야는 소바 시니세 연합에 속해 있다. 소바집 가운데 3대 넘게 이어진 가게들이 연합회를 만들었다. 이 시니세 연합 안에서도 수타면을 고집하는 곳은 간다 마쓰야를 포함해 서너 곳뿐이라고 고다카 도시는 설명했다. 고다카 다카유키를 포함한 요리사 5명은 손님이 몰리는 토요일엔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1천인분의 소바를 만들어낸다. 좋은 재료는 이번에 취재한 모든 시니세의 기본 덕목이었다. 간다 마쓰야도 메밀을 공급받는 가게와 5대째 관계를 이어간다.

밤 10시.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강경파’들은 어느새 이웃집 아저씨·할아버지로 변해 있다. 고다카 도시는 “시니세 하면 교토다. 도쿄는 시니세가 적다. 교토에서는 100년 됐다고 시니세에 안 끼워준다. 300~400년은 돼야지”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 옆에서 험상궂은 고다카 다카유키도 그제야 입가에 보일락 말락 웃음을 띤다. “돈가스 시니세 ‘호라이야’도 취재한다고? 거기 우리도 종종 간다. 고기가 아주 두껍지. 스시코 혼텐에 가면 아들 고다카 다카유키 안부 전해주고, 다마히데(玉ひで)에 가면 내 소식 전해줘!” 떠나는 취재진에게 고다카 도시가 손을 흔들며 부탁했다.






⊙ 주소·연락처 : 도쿄도 간다스다초 이치-주산(東京都 神田須田町 1-13). 영업시간 오전 11시~저녁 8시. 토요일 축일(휴일)은 저녁 7시까지. 일요일 정기휴무. 03-3251-1556. www.kanda-matsuya.jp. 기치조지의 도큐백화점에 지점이 있다.

⊙ 대표 메뉴와 가격 : 모리소바(찬 소바) 600엔(6000원), 가시와 난반 950엔(9500원).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