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무라이가 개척한 ‘돈가스의 성지’


기사입력 2008-07-26 15:17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매거진 esc] 도쿄 백년 맛집 이야기 렌가테이

맛 유지 위해 마요네즈도 직접 만드는 일본 최초의 포크가쓰레쓰 전문점


돈가스는 음식이 아니다. 먹을 수 있는 역사책이다.

돈가스는 프랑스 요리인 코틀레트(영어로 커틀릿)가 변형된 독특한 음식이다. 중국·한국도 똑같이 서양 요리를 접했지만, 돈가스 같은 ‘변형된 양식’을 개발하지 않았다. 오직 일본만이 서양의 음식을 자기 음식으로 변형시켰다.

64년 도쿄올림픽 뒤 인테리어 안 바꿔

코틀레트를 일본인들은 가쓰레쓰라고 불렀다. 원래 프랑스 코틀레트는 송아지나 양, 돼지의 등심과 등심 형태로 자른 고기를 튀긴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 코틀레트를 변형시켜 닭이나 쇠고기로 가쓰레쓰를 만들었다. 그 뒤 돼지고기를 쓴 포크가쓰레쓰가 나왔고, 20년 뒤 포크가쓰레쓰가 돈가스가 된다. 일본 음식사가 오카다 데쓰는 저서 <돈가스의 탄생>(뿌리와이파리)에서 일본 최초의 포크가쓰레쓰가 이달 3일 찾은 렌가테이(煉瓦亭)에서 첫선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렌가테이는 ‘돈가스의 성지’인 셈이다.


렌가테이는 19세기 사회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났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은 거대한 혁명이었다. 농경사회에서 급격하게 산업사회로 변하는 과정은 구시대의 지배계급인 사무라이(무사)계급에게는 재난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상공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무라이들의 월급을 가차없이 끊어버렸다. 세상의 중심은 생산이어야 했다. 도쿄 아사쿠사의 가난한 하급 무사 기타 모토지로도 역사의 무한궤도를 피할 수 없었다.

기타 모토지로는 난생처음 노동으로 살아가야 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체격이 작은 이유가 서양인과 달리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메이지 정부도 육식을 장려했다. 기타 모토지로는 ‘고기 요리’가 유행임을 직감했다. 그는 혈혈단신 서양인이 모여 살던 요코하마의 프랑스인 클럽 주방 문을 두드렸다. 프랑스인 클럽은 일본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고 음식을 먹던 연회장이었다. 기타 모토지로는 중국·조선인 동료와 접시를 닦으며 코틀레트를 익혔다. 때마침 요코하마에서 긴자 근처 신바시까지 전차 노선이 생겼고, 1895년(메이지 28년) 기타 모토지로는 렌가테이를 열었다.

렌가테이는 가스등 거리를 뜻한다. 실제로 렌가테이의 조그만 간판에는 창업 1년 뒤 서양화가 손님이 그려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스등이 켜진 긴자 거리에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64년 도쿄 올림픽 뒤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았다는 고풍스런 내부가 인상적이다. 도쿄올림픽 때 샀다는 스웨덴제 ‘스웨다’ 계산기가 여전히 계산대를 지킨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의 취재를 경험했다는 3대손 기타 아키토시(74)가 역사 강의를 하듯 능숙하게 레스토랑의 긴 역사를 들려줬다.

2차대전 패전은 렌가테이에도 시련이었다. 긴자 근처에 있던 지점은 미군정에 사무실로 무상 접수 당했다. 주식인 밀가루와 쌀이 배급제라 암시장에서 구해야 했다. 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어릴 적 물장구 치던 주변 신바시와 니혼바시(바시는 ‘다리’) 주변 하천이 복개되는 것을 기타 아키토시는 묵묵히 지켜봤다. 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부동산 버블(거품)은 가게를 팔 생각이 없는 시니세에게는 되레 재앙이었다. 요즘 한국인이라면 천정부지로 솟은 땅값에 얼른 식당을 팔고 차익을 챙기겠지만, 그럴 마음이 없는 시니세에게 땅값 상승은 재앙이었다. 오른 땅값 때문에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물어야 했다.

기타 아키토시는 중학생이던 열두살 때부터 주방일을 도왔다. 그는 아버지에게 혼쭐나 가며 돈가스 요리를 배웠다. 패전 뒤 가스가 없어 코크스(석탄을 정제한 연료)와 석탄을 섞어 땐 불 조절에 진땀을 뺀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여러 대에 걸쳐 후손들이 식당을 잇는 것은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문화다. 일본인들은 ‘장인 유전자’라도 타고나는 것일까? 기타 아키토시에게 “다른 일을 꿈꿔보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그런 게 왜 없었겠냐. 그런데 결국 뒤를 잇게 되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장남이 가업을 잇는 게 전통이었으니까.” 대신 형제들은 다른 길을 갔다. 동생은 <요미우리신문> 기자였다. 그는 외아들인 4대 기타 고이치로와 손자가 계속 가게를 이어가길 바란다.

돼지기름과 샐러드유 반반씩 섞어 사용



시니세에서는 전통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맛을 유지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전통만 먹으러 시니세를 찾진 않는다. 렌가테이에서 여전히 마요네즈를 직접 만드는 이유다. 렌가테이의 100년 넘은 맛의 비밀은 기름에 있다. 렌가테이에서는 돼지기름(라드)과 샐러드유를 반반씩 섞어 사용한다. 질 좋은 돼지기름을 사서 매일 아침 이를 녹여 돈가스 튀길 기름을 직접 만든다. 엄선한 돼지고기를 쓰는 것은 기본이다. 렌가테이는 50년째 같은 가게에서 돼지고기를 공급받는다. 한 입 베어 물자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럽고 촉촉한 돼지고기가 씹혔다. 육즙이 풍성했다. 고슈 지역에서 양조된 ‘렌가테이’ 레이블 와인을 곁들였다. 당도가 낮고 산미 높은 맛이 돼지고기 육즙과 섞여 입 안을 풍성하게 채웠다.




■ 주소·연락처 : 도쿄도 주오구 긴자산초메 고반 주로쿠고(東京都 中央區 銀座3丁目 5番16호) 03-3561-3882·7258.

■ 대표 메뉴와 가격 : 점심메뉴 포크커틀릿 1250엔(1만2500원), 밥·빵 추가 200엔(2000원). 스페셜 포크커틀릿 1450엔(1만4500원). 렌가테이 와인 작은 병 800엔(8000원).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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