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장·미국에 충성…절대적 국민 건강권 내버렸다”
울리히 벡 〈한겨레〉 특별기고
위험 예견, 역동성 창조…새 저항 연대 형성
정책 전반으로 불만 폭발…정부 강경진압만
 
 
한겨레  
 








 

» 울리히 벡/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64)이 <한겨레>에 최근 한국사회의 촛불시위에 대한 특별기고를 보내 왔다.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인 그는 <위험사회>에서 서구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사회의 일상적 위험이 급증하고, 그 속에서 사회변혁의 동력도 있다고 주장했다. 촛불시위를 비상한 관심 속에 주시해 온 벡은 이 글에서 촛불시위가 한국사회에 내재된 위험과 사회변혁의 동력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위험을 평가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부정적인 측면, 즉 파괴적 에너지를 강조하는 게 첫째다. 둘째는 그 위험이 수반하는 공공성에 주목한다. 위험은 정치적 지형을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권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한국 동료들과 친구들, 독일 신문 등을 통해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의미 깊은 위기갈등이 불붙듯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의 현 갈등 상황은 내가 쓴 책 <글로벌 위험사회>(Weltrisikogesellschaft)에서 묘사한 체계의 모든 특징을 빼닮았다.

재난이 아니라 재난에 대한 예견이 문제다. 바로 이 예견이 거대한 정치적 역동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 시민사회의 각종 조직과 운동 진영, 일부 대중매체 사이에 새로운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위기 갈등의 기폭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과 관련 있다. 이 모든 것은 초국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대부분은 이 현상을 집단 편집증의 발병이라고 여기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다. 이는 그가 아직 유예기간이라는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려고 물대포와 몽둥이를 동원했다. 1700여 운동가들이 저항운동을 호소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다른 지방도시에서도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대의 권력은 그들이 가진 우려의 정당성에서 나온다. 시위대는 소비자와 연대해, 국가기관에 맞서 소비자의 이해를 관철시킨다. 국가기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이지만, 실상 국가기관은 시장우선주의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충성 때문에 가장 절대적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국민의 건강권을 내버렸다.

이에 걸맞게 시위자들도 쇠고기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통령이 국민의 건강기본권, 식품안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팻말에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들이 나타났다. 산발적인 위기갈등은 마침내 정치적·사회적 개혁의 전반적 방향을 놓고 고민하는 국면으로 발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부문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도와 의료를 민영화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재벌과 대기업을 비호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위신을 세워줄 사업이라 여기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관철시키려고도 했다.

그런데 이런 갈등 안에는 중요한 물음들이 숨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글로벌 위험사회 문제에 직면해 실패의 위협을 받고 있는가? 국가는 이런 갈등을 통해 국민이 점점 거세게 요구하는 안전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적 책임을 떠맡는 방향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이로써 전통적 좌우 대립이 새로운 양상을 띨 것인가?

시민들이 국가의 간섭과 통제라면 무엇이든 반대하던 미국에서도 문명적 위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정치적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편 또다른 유력한 세력들은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든 연대를 통해서든 큰 국가적인 지원 없이 위기와의 싸움에 대비하고자 한다.

마침내 한국은 이 대안들 앞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즉 “시장이 알아서 조정할 것”이라는 이론과 “국가들은 지구적인 위기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이 변해야 한다”는 이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그 원인은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꼭 필요한 능력, 곧 환경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신뢰를 얻어내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울리히 벡/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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