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가장은 투명인간일까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임금을 보장하라는 주장, 여성 노동자는 ‘딸린 식구’ 취급하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가족임금’이란 개념이 있다. 가족의 생계를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노동자(빵을 벌어들이는 자)한테는 노동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정도의 임금(가족임금)이 주어져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다. 가족임금 논리를 적용받는 노동자는 대부분 남성들이다. ‘여성은 가정, 남성은 일터’라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가끔 가족임금 쟁취를 내건다. ‘여성 가장’을 고려할 때 과연 가족임금의 신화는 유지돼야 할까?



△ 가족임금을 보장하라? ‘유기농 자활공동체’에서 4명의 여성 가장이 유기농 반찬을 만들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가족의 빵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 가장은 갈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가구주는 2008년 329만3천 가구(총가구의 20.1%)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05년 현재 ‘자녀를 둔’ 한어머니 가정은 108만3천 가구에 달했다. 그리고 가난은 여성에게 집중된다. 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 가구주 가구 중에서 빈곤가구 비율은 21.0%, 전체 빈곤가구에서 여성 가구주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45.8%에 이른다. 이처럼 여성 빈곤가구가 많다는 사실은 가족임금 논리가 여성 취업자한테는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실 가족임금 개념은 애초에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배제할 목적으로 남성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이다. 노동력 과잉에 따른 남성 저임금의 원인이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에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남성의 이익을 위한 노동조합과 자본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노동과 페미니즘>(조순경 엮음)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가족임금제는 남성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는 근거로서가 아니라 저임금 여성 노동력 동원을 합리화해주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인 임금우위를 누리면서 남녀 임금차별에 둔감해지도록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나라 전체 여성의 평균임금 수준은 2006년 남성의 63.1%(남성 평균 월총액 279만원, 여성 178만3천원)에 불과하다. 특히 2006년에 월급여총액 150만원 이하를 받는 노동자는 여성의 경우 전체 여성 임금취업자의 51.9%(남성은 전체 남성 임금취업자의 21.7%)에 달했다.
자본은 항상 새로운 노동 공급 원천을 확보하려고 한다. 노동 수요보다 노동 공급이 풍부해야 임금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발견한 노동력의 저수지는 여성들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는 여성들의 파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기엔 여성들을 집 바깥으로 끌어내 일터로 보내려는 자본의 요구가 깔려 있다. 물론 예전에는 자본이 가족임금 타협을 통해 가족생계 임금을 지불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가족임금 논리를 앞세워 저임금 여성 노동력을 적극 활용한다. 남성 배우자가 이미 가족임금을 받고 있으므로, 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니므로, 낮은 임금을 줘도 된다는 논리다. 여성한테는 복사나 커피심부름 역할을 맡긴다는 ‘사무실의 부인’(office wife) 관념 역시 어떤 의미에서 여성은 생계책임자가 아니고 ‘딸린 식구’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고착화한다.
과연, 한창 자녀를 키워야 할 나이에 혼자 되어 임금근로에 나서는 여성은 얼마나 될까? 여성 ‘가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유추해볼 수는 있다. 여성 가구주 가운데 나이 40대가 19.6%이고, 여성의 평균 이혼 연령은 39.3살(2006년)이다. 배우자가 생존해 있으나 남편이 실직 상태 등에 있어서 부인이 혼자 벌고 있는 가구는 2005년에 40만8천 가구에 달했다. 2006년 현재 기혼 남성 실업자는 25만 명이다.
여성 가장의 일터가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이란 점은 전혀 놀랍지 않다. 40만8천 가구에 이르는 ‘부인 홑벌이 가구’ 중에서 단순노무·판매·서비스직 종사 가구는 23만3천 가구에 달한다. 혼자 벌고 있는 여성 가구주들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본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생산을 ‘외부화’하고, 이에 따라 소규모 납품·협력업체가 급증하고 있다. 저임금을 이윤의 원천으로 삼는 소규모 업체일수록 여성 노동력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2005년 현재 국내 100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는 276만 명(전체 여성 취업자는 359만 명)에 이른다.
물론 선배 여성 세대에 비해 요즘 여성 노동자들의 지위는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가족임금을 보장하라”는 슬로건은 여성 가장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여성 가장들이 궁핍에 빠져들고 있는 지금,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임금평등 없이 빈곤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가난해도 어쨌든 그들도 그럭저럭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을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