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해운대 누리마루로 가게 되었다. 절대로 누리마루만은 가질 않겠다고 발버둥(?)쳤지만 분위기 애매했던 담임회의 때 "반끼리 따로 갑시다"라고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은 탓에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단체로 가는 걸로 결정되었고 충렬사엔 다른 학교가 이미 예약이 되었기 때문에 최악의 장소만 남게 된 것이다. 누굴 탓하겠노. 내 잘못이다. 누리마루 견학에 동백섬 한 바퀴 돌고 최치원 동상 앞에서 점심 먹은 후, 학급시간(실은 해산) 휴=33

이것만으로 소풍 끝~이라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다른 뭔가가 없을까? 내가 좀 튀는 듯 보이더라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른 담임샘 마음이 좀 불편하게 되더라도 시네마테크 가서 우리반 전체 영화 한 편은 보자! 그래야 그나마 소풍스럽지. 아이들? 꼬시면 된다. 부랴부랴 알아보았더니 8일 아침 9시~11시 [가을소나타]라는 작품을 우리 반만을 위해 특별히 상영해줄 수 있다는 긍정적 답을 들었다. "그래 내가 욕 좀 먹더라도 밀어부치자" 결심했는데 어제 필름이 서울로 올라가버리고 또 영사기사님도 일이 생겨 9시엔 출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ㅜㅠ 마음엔 안차지만 시네마테크 견학을 부탁해두었다.

9시 반, 메가 앞에서 우** 샘의 자가용을 얻어타고 아이들과 만나기로 한 조선비치호텔 옆 백사장으로 갔다. 호텔 쪽 계단에 우리 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10시가 가까와지면서 점점 늘어나는 아이들. 1분 지각에 100원씩이라고 했으니 그리고 나의 집요한 성격을 알고 있으니 감히 지각하겠나? 오산이었다. --; 마지막으로 10시 30분 넘어서 온 민지와 소희가 낸 벌금까지 합하니 정확하게 15,000원의 학급비가 생겼다. 민지와 소희는 벌금이 너무 많은 것 같아 2000원씩만 받았는데도. 떡값에 보태야지. 벌금의 효과인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말거라~ 했던 은근한 협박 덕분인지 아무튼 우리 반 지각생의 숫자가 가장 적었다. 그래서인지 늦은 놈들에게 별로 화도 안났다. 아이들 사이에 섞여 열심히 나의 오래된 '필카'의 셔터를 눌려댔다.

전체적으로 늦게 온 녀석들이 너무 많아 11시 가까이 되어서 출발하게 되었다. 누리마루까지 걸어가는 해안산책로. 날씨가 좋아 바다빛과 하늘빛이 예술이었다. 허식 찬란한 누리마루 구경보다야 바다바람, 하늘색깔에 눈 한번 더 주는 게 훨 낫지. 담임된 탓에 어쨌든 누리마루 앞에서도 이어지는 셔터질.

동백섬 꼭대기 최치원 동상 근처에서 아이들 밥을 먹이고 1시쯤에 시네마테크로 출발했다. 걸어가면 꽤 멀라나? 생각했는데 아이들 챙기면서 가도 30분이 안 걸렸다. 뾰족구두 신은 아이들은 발이 아플 만한데도 34명 모두 투덜거리는 녀석 하나 없다. 옆에서 걷고 있던 아라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들은 안단다. 내 정색의 무서움을. 응? 내가 언제? 올해는 엄청 자제하고 있는데? 아니란다. 분명 정색을 그것도 몇 번이나 했단다. 흠흠... 아무튼 땡볕 아래 열심히 걸어가는 우리반 아이들... 고맙다는 생각은 왜 시도 때도 없이 드는 건지. 입구에서 사진 두 방 찍고. 자료실이며 평소에는 올라갈 수 없는 2층 필름보관실까지 둘러보았다. 나는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다리 아프다며 시큰둥~ 아무튼 앞으로 여기 올 일 많을테니 위치라도 제대로 알아두면 좋겠지. 설명해주신 분께 인사드리고 아이들을 버스 정류소까지 데려다주는 것으로 담임의 임무를 끝냈다.

계획했던대로 아홉산 가서 쑥을 캘 수 있었다면 아이들이 더 좋아했을까? 분명 더 재밌고 즐거웠을거야. 안타까운 쑥떡들이 내 머리속에서 맴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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