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건축가를 대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열가지 선정한 일이 있다.

당연히 영주 부석사가 1위를 차지하였는데 의외로 조계산 선암사가 상위에 올랐다.

선암사는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불국사 석가탑 같은 빼어난 건축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선정된 것은 어찌된 영문일까?

 

선암사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나서지 않고 산속에 아담하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람배치가 자연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근대에 들어 가람배치가 거의 변경되지 않고 원래 모습을 (19세기)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선암사를 처음 들어설 때, 작고 소담한 일주문을 마주보게 된다.

대부분의 고찰에서 만나게 되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일주문에 비해 선암사의 일주문은

참배객에게 친근감을 주게된다.

하지만 일주문이 약간 높은 돌계단 위헤 서 있기 때문에 절집으로서 위엄은 잃지않고 있다

 



 

 

선암사의 특징은 소담하고 잘 짜여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품격과 위엄을 잃지 않았으며 곳곳에 적절한 장엄이 보태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본다.

 

대웅전의 경우에도 화려함보다는 절제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돌을 잘 깎아 만든 가구식 기단 위에 지어졌다.

가구식 기단은 통일신라시대 건축된 사찰에서 흔히 보이는 양식이다.

그러나 선암사 대웅전 기단은 돌이 심하게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이는데

돌이 강한 화기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한다.

선암사가 수차례 대화재를 겪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증거라 하겠다.

 

현재 대웅전은 19세기 초반에 중건된 3 칸 짜리 조선 후기의 건축물이지만

당시 다른 건축물에 비헤 칸살이 넓어 고대형 (백제형) 건물의 흔적이 남았다고 보아진다.

 

앞뒤로 만세루와 대웅전 그리고 죄우의 심검당과 설선당의 ㅁ자형 구조에

가운데 쌍탑을 배치한 것은 아주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불전의 배치라 하겠다.

요즘 중창 불사를 거친 관광 사찰에 비하면 불전앞 마당이 횡하니 넓지 않고 균형감이 있어

참배객으로 하여금 긴장감과 숙연함을 느끼게 해준다.

선암사 가까이 있는 송광사 대웅전 앞의 황량함과 비교하면 그 느낌이 와닿을 것이다.

 



 

 

대웅전 내부의 천정 및 들보다.

두마리 용이 팔작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는 장식이다.

용은 부처님을 호위하는 생물로써 그려진다 한다.

천장의 연화무늬, 대들보의 단청 그리고 정교한 공포가 눈에 띈다.

 

날씨가 더워 마침 법당문을 열어두어 망원으로 내부를 촬영하였다.

선암사에서 좋았던 것 중의 하나가 스님들이 너무 친철하여 오히려 미안할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대웅전 옆을 지나가는데 안에 계신던 스님이 한 보살님과 이야기하고 계시다

나를 보고는 황급히 일어서셔서 합장을 하는데

오히려 내가 당황하여 어떻게 답례를 해야하는지 몰라 허둥거리기까지 했다



 

 

중요한 건축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곳 중 하나가 화장실이라면?

우리나라에 화장실이 유명한 두 건축물이 있다. 첫째는 당연히 선암사다. 다음은 안동의 병산서원이다. 

요즘은 많은 사찰이 선암사 뒷간을 벤치마크하여 재래식 화장실을 지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문도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송광사 화장실이 어찌도 선암사 화장실을 닮았는지...

다만 조금 업그레이드하여주변에 연못에 연꽃을 심어둔 것을 제외하고는.



 

 

선암사 회장실 간판을 세가지로 읽는다. 첫쩨 뒷간, 둘째 깐뒤 그리고 셋째 싼뒤다.

개방적이라는 것이 선암사 "싼뒤"의 가장 큰 특징이다. 화장실 각 칸에 문이 없다.

다행인 것은 남녀 화장실은 좌우로 분리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어깨쯤 오는 칸막이가 있다.

그리고 화장실 외벽이 살창으로 되어있어 볼일을 보면서 밖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역시 다헹인 것은 낮에는 살창이 발과 같은 역할을 하여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선암사에 가면 반드시 싼뒤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된다는 불문률이 있으며

뒷간에서 일을 보지 않으면 선암사를 본 것이 아니라는 옛말이 전해온다.

참고로 이 뒷간은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고(가장 오래된)의 화장실이다.

 

화장실의 뒷 모습이다. 뒷쪽 역시 살창으로 되어 있으며 이 뛰어난 자연 환기 장치 덕분에 화장실 내에도 밖에서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심검당은 대웅전에서 동쪽에 있는 2층 다락이 있는 ㅁ자형 건물이다.

본래 심검당은 스님들이 수련을 하는 선원으로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다행이 스님의 양해를 구하고 후다닥 둘러 보고 나왔다.

선암사 심검당을 보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낡았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이런 낡은 집에서 지낸다는 것이 조금 안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도 옛 고옥을 지키고 있는 많은 종가집이 있지만

심검당은 그 이상으로 낡았으면 낡았지 그 이하는 절대 아니다.

물론 많은 사찰에서 요사채를 번듯하게 그러나 어울리지 않게 새로 지은 것을 보고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선암사 심검당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심검당은 2층 다락이 크게 붙어 있는 독툭한 구조를 하고 있다.

건물 전체에 다락을 올린 건물은 드물게 보는 구조이며 

선암사의 경우 좁은 계곡에 절이 들어서 있어 공간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다락은 창고 대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일반 민간에서도 2층 다락은 보통 곡물의 저장 등의 용도로 쓰였다.)

지금은 거의 비어 있으며 잡동사니가 굴러다니고 빨래 건조실 용으로 쓰이고 있다.

심검당 구석에 있는 다락올라가는 계단이다.

너무 낡아 딛고 올라 갈 때 무너질까 조금 가슴이 떨렸다.

내 체중이 얼마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락 한 구석에 海와 水라고 투각되어 있는 광창이 보인다. 안에서 봐서 글자가 꺼꾸로다.

선암사가 여러번 화재를 겪어 일종의 비보책으로 곳곳에 바다 해자와 물 수자를 새긴 건물을 볼 수 있다.

화재가 빈발하여 한 때 조계산을 청량산(淸凉山)으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하였다 한다.

다락 천장이 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바람이 통하라고 안 쪽으로는 벽이 없다.




 

 

대웅전 뒷 쪽으로는 장경각, 불조전 그리고 팔상전이 나란히 서 있다.

터가 좁아서 세 건물이 처마에 처마를 맞대고 서 있다.

불조전과 팔상전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가면 원통전이 있다.

앞의 두 건물 배치상 원통전의 전경을 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봉렬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원통전을 지은 이후에 불조전을 지었다고 하여

의도적으로 원통전을 외부의 시야를 차단할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원통전은 고무래(丁) 모양으로 된 건물이며 조선조 순조때 왕실 원당으로 설치되었다.

정조가 후사가 없어 치성을 드렸는데 관세음보살의 법력으로 순조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왕실 원당이 되어 주변 양반들의 수탈에서 벗어나고 왕실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선암사가 다시 중흥의 길을 접어들게 된 것이다.

순조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오늘날 선암사는 외로운 폐사지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원통전의 입구 앞 튀어나온 포치(Porch)의 천정 장식이다.

연꼿과 학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원통전 내부에는 캐노피 같이 기둥을 세우고 불단을 별도로 만든 다음 관음보살을 모셨다.

본래는 문이 달려 있어다 하니 내부에 분리된 공간을 설치한 독특한 구조라 하겠다.

앞쪽 현판에 쓰인 大福田은 순조가 내린 것으로 왕실 원당이라는 증거이다.

사찰의 불당에 불전함이라쓰인 상자가 있는데 간혹 대복전이라 쓴 경우도 있다.

아마 시주를 의미하는 말이라 추정되는데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선암사 가장 뒤에 있는 건물이 응진전과 각황전이다.

응진전은 선방으로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각황전은 본래 장육존상을 모셔야 하나 지금은 철불을 모시고 있다 한다.

불전이지만 외부인의 참관이 허용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불전 및 건축물의 구조는 그 절의 종파에 따른 불교 교리를 형상화 하는 것이다.

선암사는 선을 중시하여 두개의 선방을 두고 있으며 하선방은 심검당이며

상선방은 칠전선원이며 응진전이 그 중심이다.

응진전이 가람배치상 선암사의 가장 윗쪽에 위치한다.

 

칠전선원 앞에는 작은 문이 있으며 호남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역시 여러단으로 된 계단 위에 있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을 내비친다.

칠전선원은 옛부터 이름난 선원으로 많은 선사를 배출한 명문 선원이라한다.

그래서 호남제일선원이라는 자부심 가득찬 현판을 떳떳이 내걸 수 있으리라.




 

 

본래 응진전은 선원으로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지금 보수공사중이라 출입제한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계단을 올라 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마당한 구석에서 공사 인부가 볼일을 보고 있었다.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그 인부는 젊은 사람으로 아마 보조인부같기는 했다.

하지만 절 한 구석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그리고 문화재인데 방뇨를 하는 사람이

어찌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어 문화재 수리를 제대로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곳을 다녀보면 옛 건축물을 보수한 것이 오히려 망가뜨린 것인지 모를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그 이유가 어찌보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문화재를 보수한다는 것은 건설 공사가 하니라 우리의 집단 자아를 다시 확인하고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데 이를 무시하고 보수를 하면 옛 건축물의 정신이 소실되는 것이리다.

 

아래 사진은 응진전 부엌 뒤 물확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석조물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다.

물확이 배치된 각도, 비례 그리고 모양의 자연스러움에 찬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우스게 소리 같지만 이 물확을 국보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하수는 차기 때문에 햇볕에 달구어 음기를 중화시키려는 지혜가 담긴 설계다.

고찰에 가면 이런 종류의 물확을 종종 볼 수 있으나 선암사의 물확만큼 균형잡힌 작품은 보기 어렵다.

지금은 공사장 인부들이  냉장고로 쓰시는지 음료수 통이 여럿 띄어져 있었으나

사진은 건져내고 찍었다.

 



 


 

선암사에는 설선당, 창파당과 같은 승방이 있으나 외부인 출입이 안되는 탓으로 관람이 불가능하였다.

이외에도 선암사 내에 아주 오래된 소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그 휘어진 모습이 장관이다.

- 쌔깜둥이 http://blog.yes24.com/chajutae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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