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해선 나도 참 할 말이 많다. 대학 시절에는 주로 자취를 했다. 1년에 한 두 번씩은 꼭 보따리를 쌌다가 풀었다. 딱 한 번, 명절날 고향에 안 내려가고 빈둥거릴 때 맛난 떡국을 대접받은 일 말고는 주인집 아주머니한테 따뜻한 대접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방세 독촉도 많이 받아 봤고, 보증금 때문에 나보다 곱절이나 나이가 많은 분과 언성 높이며 싸워도 봤다. 10년간 지속된 도회 생활동안 세상이 무섭다는 걸 가르쳐 준 건 대부분 집과 관련된 일들이었다.
‘땅바닥에 붙어 있는’ 집이 그리워
결혼을 하고서 제일 좋았던 건, 아파트 아래쪽에서 내가 사는 집을 올려다보면 이미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거였다. 십 수년간, 불 꺼진 집에 들어가서 내 손으로 불을 켜는 생활을 했던 나로선 나보다 먼저 누군가가 불을 밝히고, 집을 데워놓고 있다는 그 사실이 참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아파트와 빌라를 몇 번 전전하면서 역시 자취 시절처럼 2년마다 보따리를 쌌다가 푸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나는 아파트가 싫었다. 아주 사무치게 싫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생활 방식을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자의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이었다. 바깥에서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새가 우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 ‘허공에 뜬 성냥갑’ 속에 깃든 삶은 문득 생각해보면 소름 돋는 일이었다. 나는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날마다 ‘땅바닥에 붙어 있는’ 내 집을 그리워했다.
‘집’의 실체로부터 멀어질수록 ‘비싼’ 아파트
도회에 비해 뒤늦긴 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동네 꼬마들도 ‘푸르지오, 인벤스, 코아루 중에 어느 게 제일 좋은지’를 서로 재면서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소도시에 몰아닥친 브랜드 아파트의 바람은 거셌다. 그 무렵 나는 어느 매체에 이 브랜드 아파트 광풍을 이렇게 쓰기도 했다.
나는 아파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슬프다. 아파트는 자신의 내면과 이웃으로부터 격절될수록, 혹은 자연 세계와의 육체적 교섭이 거세될수록, 요컨대 ‘집’의 실체로부터 멀어질수록 ‘비싸다’. 욕망이 부풀린 허상만이 남아 실체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다. 거기에는 집’이 가진 영혼의 가치는 없고, 오직 보육의 안락함, 브랜드 가치, 경제적 과시 욕망, 학군, 거래의 편의성 따위만 남아 있다(‘힐 스테이트’ 위에 ‘캐슬’ 있고 그 위에 ‘타워 팰리스’가 있어요. 거기서 본 하늘은 참 ‘푸르지오’. ‘e-(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나는 결국 주택을 짓기로 했다. 나름대로 지난 몇 년동안 악착같이 모아 온 돈을 한꺼번에 홀랑 까먹는 일이었다. 땅을 사야 하는데, 부동산 광풍은 내가 사는 곳까지 거품을 훌쩍 키워 놓았다. 결국 집 한 채 들어앉히고, 조그만 텃밭 하나 가꿀 정도의 땅뙈기를 샀다. 그리고 집을 짓게 되었다.
결국 돈을 주고 다 ‘사야’ 하는 집짓기
집을 짓는 6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수없는 일들을 만나야 했다. 집 한 채를 짓고 나면 몇 년은 늙는다는 말을 절실히 느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이놈의 나라에는 건축과 관련해서 믿을 만한 표준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아니 표준이 있긴 있었다. 그건 바로 ‘돈’이었다. 내장재건, 타일이건, 바닥재건, 싱크대건, 무조건 비싸면 좋은 것이려니 믿어야 했고, 싸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 의심해야 했다.
애초 예상했던 공사 기한이 건축주인 나도 잘 모르는 이유로 계속 늘어지고, 몇 부분에서 공사를 맡은 업자들이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생겨났다. 결국 알고 보면 거기에는 결국 중간에서 관리하시는 업자분과 시공업자간의 ‘돈’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돈을 받아야 하는 쪽은 필사적이고, 돈을 주는 쪽에서는 최대한 배짱으로 튕긴다. 주택을 짓을 때 건축주가 지켜야 할 원칙은 ‘완전히 마감되기 전까지 업자에게 절대 돈을 다 주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마음 약한 나로선 그게 잘 되지 않아 입었던 마음의 상처는 일일이 다 적을 수도 없다.
사실, 집을 짓는 것과 관련해서 내가 한 일은 중간 관리를 맡은 업자분께 돈을 입금한 것 뿐이다. 블록 한 장 내 손으로 쌓지 않았다. 그런 구조 속에서 나는 ‘돈’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미 다 만들어진 아파트를 한 번에 사서 들어가는 일이 싫었지만, 결국 주택을 짓는 것도 매 순간 돈을 주고 뭔가를 다 ‘사야’ 하는 일이었다. 아파트건 주택이건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돈’이 아닌, 공공의 표준에 따라 지어져야
건축 문제에 관한 한, 이 나라에서는 상식이나 타인에 대한 믿음은 힘을 쓰지 못한다. 일단, 돈이 많아야 하고, 넉살이 좋아야 하고,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끈기와 체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꼴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선 정치권력을 교체하는 것보다, 제 살 집을 믿고 맘 편히 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 이러니, 웬만하면, 아파트에 들어가서 ‘허공에 뜬 성냥갑’에 갇혀 사는 것이다. 그게 덜 다치고, 덜 성가시고, 마음 편한 일이다.
건축 시장을 지금처럼 오로지 ‘돈’ 하나로 움직이는, ‘야매의 천국’으로 놔두어선 안 된다고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그 길이 무엇인지 떠오르는 생각은 없다. 사회주의적 이상이 이제는 거의 물거품이 되었는데, 막상 집을 짓고 보니 사회주의 국가들의 주택 정책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건축 시장 하나만 놓고 봐도 우리네 삶터는 그야말로 정글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제도가 욕망을 통제하고, 공공의 표준이 ‘야매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집에서 사는’게 아니라 ‘집을 떠메고’ 산다. 이제는 이런 일을 만날 일이 없어 홀가분하지만,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제 살 집을 지으면서 맘고생을 하고 상처를 입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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