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외에 가만히 서있어도 온 몸에 끈적끈적한 기운이 감도는 일본의 여름날. 밤이 되면 그 기운은 더 심해진다. 후다닥 실내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에 더운 기운을 가셔내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다. 오후 10시, 일본 히로시마의 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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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조선학원 ⓒ민중의소리 |
사케와 각종 꼬지가 있는 주점의 불빛들이 잘 포장되어 있는 도로 위를 비출 때 그렇게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히로시마조선학원)을 찾았다. 지난 96년 유치반,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폐합한 히로시마조선학교는 히로시마 JR선역에서 도보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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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소리 |
히로시마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는 츄고쿠(四國)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통학을 하는 히로시마조선학교의 여학생들을 역 앞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조선학교 아이들을 향한 일본인들의 협박 또는 공격들에 대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들의 발걸음은 훨씬 씩씩하고 당차보였다. 총 학생의 인원이 281명, 그리고 교원수가 28명인 이 학교는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치안을 위해 교사들이 직접 나서 숙직을 섰다. 하지만 점점 일본 사회 내 조선학교 학생들을 향한 압박이 커지면서 사설 경비 업체에 치안을 맡겼다,
현재 히로시마에 유일한 조선학교인 이 곳은 이전엔 히로시마 전반에 10개곳이 있었다. 그러나 1996년 초중고가 모두 존재하는 통폐합이 됐다. 한 학급당 학생들의 국적은 조선적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적이 28%, 일본적 1%, 이중국적이 1%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이중국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건 국적은 다르더라도, 모든 학생이 '민족은 하나다'라는 신념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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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 문 옆 붙어있는 경쟁표. ⓒ민중의소리 |
고등학생이 되면 츄고쿠 지역까지 통학하기 어려워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조선학교를 오르는 언덕 앞엔 자그마한 맨션이 있는데 그것이 기숙사다. 기숙사엔 총 60명의 학생이 있고, 방 마다 3~4명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통폐합으로 그렇게 어렵게 세워진 지 11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정도 중소규모의 조선학교를 갖출 수 있었던 건 히로시마에 살고 있는 1만2천여명의 동포들이 낸 찬조금 덕분이다. 건물이 건설되어서는 안되는 부지였는데도 불구, 재일조선인들이 모두 함께 나서 행정당국과 싸우면서 지금의 터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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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일열 교장 ⓒ민중의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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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출신임을 제일 처음 밝혔던 히로시마조선학원의 리일열 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겸손한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주택이 원래 없던 지역에 집을 지었고 또 학교를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학교를 지을 때 일본 지역 건설 관계자들을 일부러 초대하기도 했지요. 언덕에 올라있으니 히로시마 전체가 다 보여 경치도 좋고.. 매입에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웃음)
히로시마의 일본인들에게 히로시마조선학교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민족교육을 시작한지도 60년. 그러나 여전히 학교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오해 또는 왜곡이 난무한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일방적으로 그대로 믿고, '(조선학교가) 왜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인식들이 강합니다. '북한 학교다'라던지, '사상교육을 하는 것이냐'라는 말과 함께 '무서운 학교'라는 인식이 더러 있지요. 공화국의 미사일, 핵 등이 계기가 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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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소리 |
'조선인 죽어라'라고 하는협박 전화, 엽서는 물론이고 치마저고리를 찢거나 어린아이들에겐 우산으로 엉덩이를 찌르는 등의 일도 있습니다. 최근 몇년 사이 19건 정도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학부모와 토론을 많이 합니다. 학부모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치마저고리를 고집합니다. 제2교복을 만들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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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소리 |
그간 조선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들었던 이야기는 모두 같았다. 학교 다닐 때 받았던 차별과 무시, 그리고 괴롭힘에 대한 회상들이 그것이다. '민족심'. 치마저고리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통, 그 미묘한 갈등속에서도 치마저고리를 아이들이 벗을 수 없는 건 바로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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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가장 윗층에 있는 강당. 강당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히로시마의 야경은 장관이다. 리일열 교장의 또 다른 자랑 중 하나가 바로 멋진 야경 풍경이다. ⓒ민중의소리 |
"정확히 재일동포의 경우, 특수한 역사성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교육을 명확히 하고, 또 민족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 하지요. 사실 민족교육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6,70년대엔 '본국으로의 귀국'이라는 것이 배경에 깔려있었습니다. 그러한 방황 속에서 3세라는 아이들이 나오고 또 세대가 교체됐지요. 일본 동포들의 저항은 곧 귀국이 아니라 일본의 정착이 되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민족성이 정확히 이어간다면 정확히 자연스레 민족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지요."
리 교장 그 스스로에게도 다시한번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계속 민족학교를, 그리고 교사들과 조선학교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힘있는 답변도 전했다. 동시에 새 세대들이 이것을 지켜서 이어줘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특히나 "나라가 하나가 되고, 또 하나가 되면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꼭 알아달라"고 강조했다.
"(참의원 선거로) 민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서면서 재일조선인 정책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6자회담이 좋은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고 그 사이에서 일본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올해 6월말에 북으로 수학여행을 갔다왔는데 거기서 이미 통일되었다는 기분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왔지요. 한국 전쟁 이후, 재일조선인들을 보면서 '일본 사람이냐, '북쪽이냐' 합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울 때 이끌어주고, 중단 없이 신념, 민족 지켜간다는 것 그만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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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의 통학버스 ⓒ민중의소리 |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지 못한 것을 섭섭해하는 기자에게 리 교장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짓게 하는, 학교의 하루 일과에 대해 설명했다. 아침 6시면 재잘재잘 거리며 버스에서 내리는 유치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소학교 아이들은 츄고쿠 지방에서 혼자 통학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에 학교에 마련되어 있는 5~6대 차량이 아이들의 통학을 책임지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저절로 '감각적으로나마' 어느새 버스에서 부리나케 내려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교실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그려지고 5층 강당에서는 장구, 북 등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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